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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희의 세상속으로]국과수 법의학 과장 이 한 영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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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희의 세상속으로]국과수 법의학 과장 이 한 영 씨

입력
2003.03.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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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死者)는 끊임없이 말을 건넨다. 나는 누구이며 어떻게 살아왔고 또 어떻게 죽었는 지를. 차가운 스테인리스 부검대 앞에서 이한영(李漢榮 ·45)씨는 묵묵히 그 얘기를 듣는다. 시신을 가르고 장기를 잘라내고 뇌를 들어내는 일은 그들이 더욱 많은 얘기를 할 수 있도록 돕는 대화술이다. 이씨는 국립과학수사연구소 법의학과장이다. 그가 하루종일 부검하는 시신은 평균 10구가 넘는다. 부검(部檢)이란 말 그대로 해부해 검사하는 일이다. 군의관 시절을 포함, 무려 4,000여구가 그의 손을 거쳐갔다. 그는 명문의대를 나온 박사다. 그런데 돈 되는 일 대신 왜 이렇게 험한 일을 하냐고? "삶에 대한 사랑이지요. 역설적인가요?"

이씨의 일을 이해하기 위해 워밍업을 해보자. 실제 사례들이다.

문1>실종된 고위 공무원이 여관에서 목을 맨 시신으로 발견됐다. 그는 독직사건의 유력한 증인이었다. 그런데 목을 맨 줄은 가슴에도 못 미치는 높이에 걸려 있었다. 자살일까, 아니면 자살로 위장한 타살일까.

문2>선거 지원을 나섰다가 모텔에 들었던 야당의 유력인사 둘이 이튿날 아침 모두 시신으로 발견됐다. 그것도 각기 따로 잡은 방에서. 누군가의 소행이 아니라면 어떻게 이런 공교로운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문3>유원지 외진 곳에서 모자가 숨졌다. 아이와 어머니의 머리 등에는 심한 상처가 나 있었고 사인은 바로 그 무수한 타박 때문인 것으로 확인됐다. 그러나 이 사건은 타살로 결론 내려지지 않았다. 왜 일까.

답1>간단하게 자살로 결론났다. 이씨는 "영화에서 보듯 발이 닫지않는 곳에 목을 맨 경우 오히려 위장 타살을 의심한다"고 했다. 앉거나 심지어 누운 자세로 숨지는 경우도 흔하다. 목을 매거나 졸라 뇌에 혈액공급이 차단되면 순간적으로 의식을 상실, 그 뒤에는 생존을 위한 어떤 몸짓도 불가능해진다.

답2>자칫 큰 정치적 사건으로 비화할 수도 있던 이 사례 역시 이씨가 명쾌하게 의혹을 풀었다. 일산화탄소 중독시 나타나는 선홍색 시반(屍斑·사망 후 적혈구 침착으로 피부에 나타나는 반점. 보통은 검은 빛)을 보고 연탄가스 중독으로 단정지었다. 야당측은 펄펄 뛰었지만 엉성한 굴뚝이 두 방의 갈라진 외벽을 지나는 것을 확인하고는 납득했다.

답3>어머니가 아이를 숨지게 하고 자신도 자살한 경우다. 아이 몸의 여러 차례 타박은 확실하게 하기위해 (아이가 혹 살아나 힘든 세상을 홀로 살아가는 일이 없도록. 물론 정상 정신상태는 아니다) 어머니가 가한 것이고, 자신의 몸에 난 숱한 타박은 아이가 받은 고통을 똑같이 겪겠다는 심정으로 스스로에게 가한 것이다.

초보적 사례들이지만 이런 게 법의학이다. 원래 연세대 의대에서 해부병리학을 공부하면서 교수가 되려했던 그는 군의관으로 국방부 과학수사연구소에 배치되면서 방향을 틀었다. "죽음의 원인을 추적하다 보니 왠지 다른 분야는 시시해 보였어요."

그래서 90년 봄 전역과 함께 잡은 모교 전임강사 자리를 미련없이 버리고 그해 여름 국과수에 들어갔다. 물론 집안의 반대는 컸다. 아내도 서운해 했다. 공무원 봉급으로 빠듯한 살림을 꾸리다 보니 몇 년 전까지는 딸에게도 아빠가 영 의사 같지 않았나 보다. "아빠, 의사 맞아?" 억울한 생각에 중학 2학년(지금은 고3 수험생이다)짜리 딸을 데리고 출근했다. 그날 비로소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일을 하는 우리 아빠"라고 인정을 받았다.

십수년을 매일 해온 일이지만 시신을, 그것도 마구 훼손된 시신을 대하는 일은 여전히 쉽지 않다. 포르말린 가스가 눈을 찌르고 부패한 시신에서 풍기는 냄새는 참기 힘들만큼 역하다. 하지만 사자(死者), 혹은 살아있는 자의 억울함을 풀어주는 보람 만큼은 무엇과도 바꾸기 힘들다.

몇년 전 경주의 아파트에서 부부싸움 소리가 들린 뒤 여자가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은 지역 외과의의 '이마에 상처, 뇌출혈' 소견에 따라 남편을 살인범으로 단정했고 법원은 15년 형을 내렸다. 그러나 항소심 변호사가 보내온 사진을 본 이씨는 깜짝 놀랐다. 여자의 목에 가는 색흔(목 졸린 흔적)이 보였던 것이다. "그게 직접 사인입니다." "그럼, 뇌출혈은?" "검시 때 두개골을 들어내면서 나온 피가 뇌 표면에 번진 것을 잘못 판정한 겁니다." 재조사 결과 남편이 잠깐 자리를 뜬 사이 부인이 베란다 빨래건조틀에 목을 맨 것으로 드러났다. 머리의 상처는 그 뒤 빨래 건조틀이 휘면서 시신이 베란다 콘크리트 턱에 부딪혀 생긴 것이었다. 남편은 물론 무죄로 풀려났다.

지난해 수사검사 구속과 검찰총장의 퇴진까지 몰고 왔던 살인피의자 고문치사사건도 이씨 손을 거쳤다. 토요일 저녁 집으로 다급한 전화가 걸려왔다. "구치소에서 피의자가 죽었습니다." 부검실에는 검사들도 와 있었다. "자해를 했답디다." 그러나 문신으로 뒤덮인 허벅지 안쪽에 변색된 타박흔이 눈에 띄었다. "자해가 가능한 부위가 아닌데…?" 피부를 벗겨보니 온 몸에 피하출혈이 나타났다. "조폭이라면 큰 싸움을 했거나, … 혹시 그 안에서 폭행이 있었습니까?" 옛날 곤장을 맞고 장독(杖毒)으로 죽는다는 게 이런 경우다. 맞은 부위에 피가 집중적으로 몰리면서 심장 혈액 부족으로 사망하는 것이다. 우리 몸의 피 6∼7 리터 중 3분의 1 이상이 허벅지 한 군데 상처로 몰릴 수도 있다.

엄정하게 사인을 쫓다보면 멱살을 잡히는 일도 종종 생긴다. 의사의 과실을 확신하는 유족 앞에서 췌장염 환자에게 금물인 물을 간병자가 모르고 먹여 췌장을 녹여버린 사실을 밝혀냈을 때도 그랬다.

그러나 모든 죽음의 원인이 명쾌하게 밝혀지는 것은 아니다. 부검 의뢰된 시신의 3∼5%는 '사인 불명'으로 처리된다. 너무 부패한 경우가 가장 흔하고 의료사고, 복합적인 교통사고, 주변 정보가 전혀 없을 경우 등이 그렇다. 특히 물 속에서 감전됐을 경우에는 피부에 탄 자국조차 없어 사인 판단이 정말 어렵다.

이씨는 요즘 더 정신이 없다. 대구지하철 참사 때문이다. 사건 직후 팀원 40여명을 인솔해 내려가 열흘간 하루 3∼4시간 눈 붙이며 신원감식에 매달렸다. 이후에도 대구를 오가며 팀 작업을 점검하고 있다. "그나마 이번엔 우리 팀이 현장이 크게 훼손되기 전에 투입돼 다행입니다. 한 사람 것이라고 모아놓은 뼈 무더기를 감식해 보니 다섯 구로 판명된 경우도 있었어요. 사망, 실종자의 80∼90%는 신원을 찾아낼 수 있을 겁니다." 현장이 엉망이 됐던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때는 신원확인율이 50%에도 미치지 못했다. 지난해 중국 민항기 추락사고 때처럼 희생자 명단이 다 있는 경우에도 3개월 이상 걸렸을 정도로 신원확인은 지난한 작업이다.

그는 열심히 교회를 다닌다. 자칫 빠지기 쉬운 허무주의를 극복하기 위해서다. 죽음마저도 일상으로 다루다보니 세상사가 부질없이 느껴지기 십상이다. 놀다 손뼈가 부러져 통증을 호소하는 어린 아들에게 "그럴 수 있어. 그것 갖고 죽냐?"고 무심히 반응하는 자신에게 화들짝 놀라기도 한다. 사무실에서 틈나는대로 클래식 음악을 듣는 것도 무뎌가는 정서를 경계하는 노력이다.

전쟁 같은 일과를 끝내고 착잡하게 담배를 피워 물면서 이씨는 말한다. "죽은 자는 모든 것을 얘기합니다. 시신에는 그가 살아 온 사연이 숨김없이 담겨있지요."

그러니 모든 살아있는 자들은 방심하지 말진저. 죽음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삶의 아름다움과 추함이 드러날지니.

/편집위원 junlee@hk.co.kr

이한영씨는 돈이 안된다는 이유로 많은 의대에서 법의학강좌조차 피하고 실제 지원자도 드문 현실을 개탄한다. "법의학이야말로 인권의 최후 수호자입니다. 삶의 페이지를 올바로 닫아주지 않고는 산 자의 인권도 있을 수 없지요. 숱한 의문사가 그 반증 아닙니까."

국과수는 그래서 늘 인력부족에 시달린다. 정상 기능을 하려면 지금 20명 남짓한 법의학 인력이 최소한 3배이상 돼야 한다는 것이다. 재판에서 법의학적 결론이 부인되는 경우가 생기는 것도 전문가가 현장에 가지 못하다보니 시신 발견 당시의 조건 등 판단의 기본전제가 흔들리기 때문이다. 처우가 획기적으로 개선돼야 이런 문제들이 해결될 수 있음은 물론이다.

이씨는 당장 수사관이나 일반의사들에게도 일정 수준의 법의학적 지식을 주문한다. 변사자의 20% 정도를 부검하는 선진국에 비춰 우리도 연간 변시체 7만∼10만구 중 1만5,000∼2만구는 부검해야 한다. 그런데 5,000여건이 고작이다. 현장에서 수사관이나 검안의들이 서둘러 사인을 단정짓기 때문이다. 그만큼 억울한 죽음의 소지가 많다는 뜻이다.

그는 언론, 특히 사건기자들에게도 기본적인 법의학 소양을 당부한다. 예전 한 운동권 학생의 시신 부검에 입회한 기자가 시반을 보고는 '온 몸에 고문으로 생긴 멍이 뒤덮여 있었다'고 보도하는 바람에 곤욕을 치렀던 일을 기억하고 있다.

의문사로 남은 조선대생 이철규씨 변사사건도 비슷한 경우다. 눈이 돌출해 나온 이씨의 끔찍한 시신모습은 "뒤통수를 가격당한 고문 흔적"으로 단정지어졌다. 하지만 법의학자가 보기에는 부패한 시신 내부에 가스가 차 눈동자를 밀어낸 일반적인 익사체 모습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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