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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는 한국경제 전문가 긴급진단 / <상> 정덕구 前 산자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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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는 한국경제 전문가 긴급진단 / <상> 정덕구 前 산자부 장관

입력
2003.03.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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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 전쟁과 북핵 사태로 인한 대외 불확실성에 SK 분식회계 파문이 겹치면서 금융시장이 혼미상태에 빠지는 등 경제 전반에 위기의식이 고조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1997년 외환위기 상황과 비교하기도 한다. 긴박하게 돌아가는 한국경제의 현 상황을 진단하고, 이를 타개할 처방을 모색하는 전문가 긴급 진단을 3회에 걸쳐 연재한다.

"경제위기로 갈 만한 구조적 문제는 없지만 심리적으로는 위기 상황이다. 문제는 위기감이 실제 위기를 초래하는 사태를 막기 위해 정부가 분명하면서도 조율된 메시지를 내놔야 한다."

1997년말 외채협상을 진두지휘했던 정덕구(사진·전 산업자원부 장관) 서울대 국제금융연구센터 소장은 16일 "97년말 외환위기와는 상황이 전혀 다르다"며 경제위기설을 일축했다. 그러나 "위기의식이 실제 위기로 증폭되는 것을 조기에 차단해야 한다는 측면에서, 96년말의 과오를 되풀이 해서는 안된다"고 경고했다.

―경제주체들이 불안해하고 있다. 현 상황을 진단하면.

"대내적으로 성장과 물가가 안좋은 상황에서 대외균형(경상수지)에도 적신호가 들어왔다. 불황의 초입단계쯤 된다. 이런 상황에서 북핵이라는 복병이 발발했다. 전쟁이 꼭 난다는 것도 아니고, 단지 날 수도 있다는 불확실성 때문에 위기의식이 증폭되고 있다. 여기에다 SK 분식회계로 자금순환에 이상이 생겼다. 한마디로 경제 전반에 안개가 잔뜩 끼여 경제주체들이 겁에 질려 있다."

―경제위기인가.

"경제위기라고 하기엔 성립요건이 부족하다. 가계대출 등에서 위험신호가 울리고 있지만 97년말과는 경제구조적인 측면에서 차이가 있다. 다만 정부가 대처하기에 달렸다는 점에서 96년말과 비교할 수는 있을 것이다. 굳이 위기라는 이름을 붙인다면 실체가 없는 불확실성의 위기, 심리적 위기이다. 안개가 걷히면 별게 아닐 수 있는데, 시야가 불투명한 상황에 짓눌려 있다 보니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이런 불안심리가 시장가격화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집단적 부화뇌동 현상(herd-mentalily)'이다. 버팔로 한 마리가 요동치며 달아나면 모든 무리가 떼를 지어 질주하듯, 위기심리가 확산되면 실제 자기실현적 위기(self-fulfiling crisis)에 빠질 수 있다. 정부가 가장 경계해야 할 부분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안개는 오래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관건은 불확실성을 해소하는 것이란 얘긴데.

"그렇다. 위기감이 실제 이상으로 확산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 국제 신용평가기관이나 해외 투자기관 펀드매니저들에게 정확한 정보를 실시간으로 제공해 주는 게 최선의 전략이다. 외교·국방라인이 나서 무디스를 설득한 것은 프로다운 대응이었다. 이들이 신문을 보고 상황을 예단케 해선 안된다. '전쟁은 없다'는 확신이 설 때까지 불안은 불가피하겠지만, 정부는 상황이 단기에 그칠 거라는 확신을 심어줘야 한다. 외환위기 이후 우리 경제가 국제시장에 깊숙이 편입돼 외국 투자가들이 주도하는 시장환경에 처해진 이상, 이들이 안심하고 투자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국제금융시장에 역행하면서 우리의 정책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여지가 축소돼 있다는 얘기다. 이를 위해 정부는 최대한 솔직하고 분명한 메시지를 시장에 내보내야 하며 그 메시지는 시장에 부합하는 것이어야 한다. 견제와 균형도 중요하지만 지금은 경제팀에 카리스마와 리더십을 세워줘야 할 때이다."

―시장안정을 위한 대안은.

"당장의 콜금리 인하는 바람직하지 않을 수 있지만, 채권시장 상황이 더 악화할 경우 인하 여부도 고려해 봐야 한다. 이라크전이 마무리되면 인플레 위협은 그렇게 심각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디플레 대책이 필요한 상황이 전개될 수 있다. 환율정책은 급격한 변동을 막기위해 적절한 시장개입도 필요하지만, 정부가 과도하게 환율을 억누르고 있다는 인상을 심어주면 오히려 자본유출(capital-flight)의 출구를 열어줄 수 있다.

'소나기가 내릴 때 땅을 파지말라'고 했듯 재벌 조사를 일시 유보한 것은 잘한 일이다. 지금 진행되고 있는 개혁 드라이브 중에도 시장친화적 요소가 많지만, 이를 시장에 제시할 때는 각별히 시장친화적 언어와 논리를 통해 표현해야 한다. 재벌개혁은 제도개혁을 중심으로 꾸준히 해야 하며, 소나기식으로 전개할 경우 소기의 성과를 달성하기 힘들다."

/유병률기자 bry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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