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후명 지음 문학동네 발행·8,500원
소설가 윤후명(57)씨의 산문집 '꽃―윤후명의 식물 이야기'는 백여 가지 꽃과 나무에 관한 이야기다. 윤씨는 고등학교 때 특별활동으로 원예반을 택했다. 싫증을 잘 낸다는 그가 지금까지 가장 꾸준하게 한 일이 풀과 나무를 사귀는 일이었다. 소설가가 아니라 식물학자를 꿈꿨던 그이다. 윤씨는 오랫동안 교제해온 꽃 앞에서 지금껏 황홀해 한다. "꽃은 우리를 뇌쇄시키려고 아름다운 것이 아니다. 그것은 자신의 생존을 위한 눈물겨운 몸짓이다. 그 몸짓에서 삶을 얻고 위안을 얻는 우리는 꽃을 최상에 두고 경배할 수밖에 없다. 이 사실을 새삼스럽게 함으로써 식물에 진 빚을 티끌만치라도 갚을 수 있으면 하는 마음이다."
윤씨가 들려주는 사계절 식물 이야기는 풍요롭다. 미나리아재비, 노랑만병초, 왕고들빼기, 쑥부쟁이 같은 낯선 이름들도 윤씨의 아름다운 문장에 감싸여 향기를 뿜는다. 봄이 천천히 오는 요즘 같은 때에 개화에 관한 예상은 기상청에서 알리는 가장 화사한 소식이다. 봄소식을 기다리다 지쳤는지 작가는 "낙타를 타고 천축 땅으로 가는 느낌"이라고 적는다. 어느 해인가 신문에서는 개나리꽃이 '아기 걸음'으로 북상한다고 계산했다. 봄은 낙타처럼 걸어오고, 개나리는 아기처럼 걸어온다.
6월에 피어나는 양달개비는 흔히 물망초로 불리는 꽃이다. 해가 들면 속절없이 시들어버리기 때문인지, 이런 애달픈 이름이 붙여졌다. 꽃의 뿌리를 더듬어가다가 사랑을 만났다. "물망초는 우리 꽃으로 정해진 이름이 아니다. 산유화(山有花)가 그저 산에 있는 꽃에 지나지 않듯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풀들이 물망초가 아닐 수 없듯이. 모든 사랑이 물망(勿忘)이 아닐 수 없듯이." 가을에 몽골에서 물매화를 만났다. 사막을 상상하며 간 곳에서 꽃밭을 보았다. 세계적으로 공룡의 뼈가 많이 발견되는 곳이라고 했다. 작가의 눈은 꽃 한 송이에서 태고의 시간을 본다. 슬픔과 괴로움, 기쁨과 즐거움이 한데 모인 시간. 꽃은 지고 다시 피어난다. 겨울에도 꽃무릇과 석창포 잎은 푸릇푸릇하고 싱싱하다. 강인하게 겨울을 난다. 시련을 잘 견딘 자리에서 새 꽃이 피어난다. 너무도 당연하지만 해마다 새삼스럽게 감사하면서 깨닫게 되는 섭리다.
/김지영기자 kimj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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