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 쿠지노 지음·황보석 옮김 문학동네 발행·1만2,000원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일상을 벗어나 떠나는 여행은 우리를 사로잡는 열망이다. 여행 안내서가 쏟아지고, 여행사가 성업 중이며, 명소마다 여행객이 들끓는다.
그런 흔한 여행 말고 좀 특별한 여행은 없을까. 미국의 여행 전문가 필 쿠지노가 권하는 것은 순례다. 여기서 순례는 종교적 행위만을 가리키는 게 아니다. 쿠지노의 사전에서 순례는 '삶을 바꾸어주는 성스러운 중심을 향한 여행'을 뜻한다. 그것은 '정신을 새롭게 해주는 참된 의식'이자 '뭔가 중요한 것을 찾아내려는 목적을 지닌 모든 여행'이다. 따라서 자신에게 특별한 곳, 예컨대 조상들의 땅이나 좋아하는 가수의 묘지, 숭배하는 야구 선수가 홈런을 날린 야구장도 성지가 될 수 있고, 그곳을 찾아 떠나는 여행은 곧 순례가 된다.
'성스러운 여행 순례 이야기'는 순례를 꿈꾸지만 망설이는 많은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어 길을 떠나도록 이끈다. 여행 가방 꾸리는 법, 여로의 외로움이나 고달픔을 견디는 법, 여행의 추억을 갈무리하는 방법 등 구체적이고 실용적인 지침도 담겨 있지만 그보다는 순례의 마음가짐과 의미에 초점을 맞춰 쓴 책이다.
저자는 평범한 여행을 성스러운 여행으로 만드는 순례의 기법을 두루 소개한다. 구약성서에 등장하는 첫 순례자 아브라함부터 중세 이슬람의 위대한 여행자 이븐 바투타, 17세기 일본의 순례자 시인 바쇼 마쓰오, 1982년 자동차 사고로 죽을 때까지 28년간 평화를 호소하며 북미 전역을 걸었던 평화의 순례자에 이르기까지 동서고금의 여행자, 순례자, 예술가의 경험이 책 곳곳에 박혀 있다. 여기에 저자 자신의 체험을 보태고, 수많은 전설과 일화, 인용문, 삽화를 곁들여 풍성하게 펼쳐 보인다. 박학다식과 차분한 사색으로 글을 이어가고 있어 단순한 여행기나 여행 안내서에서 찾기 힘든 은근한 향기를 느낄 수 있다.
저자는 여행자가 집을 나서서 다시 돌아오기까지의 과정을 열망―부름―출발―길―미궁―도착―은혜로운 선물의 일곱 단계로 나누어 이야기한다. 열망에 사로잡힌 영혼은 내면의 소리에 부름 받아 상상력(필요한 건 지식이 아니다!)과 함께 출발한다. 그는 길에서 모든 것을 배우며, 고난과 시련의 미궁을 지나 드디어 성소에 도착한다. 여행을 마치고서 받게 되는 은혜로운 선물을 '천로역정'의 작가 존 번연은 이렇게 노래했다. "오래된 것들은 지나가버리고 모든 것이 새로워진다/이상하도다! 아무리 보아도 그는 새 사람이니…."
저자가 강조하는 메시지는 "진정한 순례는 우리가 지구를 반 바퀴 돌건, 아니면 자기 집 뒷마당으로 나가건, 삶을 바꾼다"는 것이다. 그는 캄보디아 앙코르와트 여행에서 얻은 깨달음으로 순례의 기쁨을 말하면서 글을 마친다. "우리는 두 번 죽는지도 몰라. 한 번은 우리의 심장이 멈추었을 때이고 또 한번은 삶이 우리에게 이야기하는 것을 멈추었을 때야." 떠나라, 삶이 우리에게 이야기하는 것을 듣기 위해, 살아있음의 성스러운 비밀을 만나기 위해.
/오미환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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