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그다드 시내에서는 어딜 가나 감시의 눈길이 번득인다. 시내 곳곳에 중무장한 경찰이 외국인이나 취재 기자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한다. 미국의 스파이 활동을 막기 위해서다.카메라 셔터 소리만 들려도 즉시 경찰이 달려 온다. 14일 기자는 시내 모습을 카메라에 담다 무장경찰에 연행되는 수난을 겪었다. 무장경찰들이 기자를 한국의 닭장차와 비슷한 이동식 파출소로 끌고 가더니 필름을 압수하고 30분 가까이 신문했다.
한국인이라고 말하자 경찰은 대뜸 북한에서 왔느냐고 되물었다. 이라크처럼 미국에 대항하고 있는 북한에 심정적 동질감을 느끼는 듯 했다. 눈치를 보아 "북한인"이라고 답했더니 곧 풀어주었다.
사복차림의 비밀경찰은 외국 기자들을 밀착 감시한다. 이동할 때면 행선지 등을 알리고 허락을 받아야 한다. 운 나쁘게 깐깐한 비밀경찰이 따라 붙으면 취재활동은 거의 불가능하다.
바그다드 시내는 파탄에 이른 경제상태를 그대로 보여준다. 궁핍에 찌든 시민들의 행색은 물론이고 군데군데 파인 도로는 개·보수가 안된 채 방치돼 있다.
죄어오는 전쟁의 공포는 하루가 다르게 떨어지는 이라크 디나르화의 가치에서 극명하게 나타난다. 공시환율은 1달러 당 1,800디나르이지만 14일 현재 2,500디나르까지 치솟았다. 13일 환율은 2,300디나르였다.
바그다드 시내에서는 미국 CNN 방송 취재진이 머무는 장소가 가장 안전하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미국이 설마 CNN 기자들이 있는 곳에 폭탄을 떨어뜨리겠느냐'고 생각하는 것이다. 현재 기자가 묵고있는 알-팔레즈 호텔의 한 관계자는 CNN 취재진이 며칠 전 이곳에서 도보로 5분 거리인 팔레스타인 호텔로 숙소를 옮겼다고 귀띔했다.
한국 반전단체들도 이라크에서 활동중이다. 기자와 함께 바그다드에 들어온 한국 반전단체원들은 13일 남부 바스라에서 반전 퍼포먼스를 펼치고 보육원과 난민촌을 찾아 한국에서 가져온 선물을 나눠 주었다.
14일 들른 바그다드 시내의 장애아 수용시설(미셔너리 오브 채러티)에는 1991년 걸프전의 상흔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여기에는 미국이 사용한 열화 우라늄탄의 잔류 방사능에 부모가 피폭되는 바람에 양 팔과 양 다리 없이 태어난 어린이 등 장애아 22명이 수용돼 있었다.
미국에 대한 바그다드 시민의 태도는 양면적이다. 일반적인 미국인과 미국의 생활방식은 좋아하지만 미국의 제국주의적 정책과 정책 결정자들은 증오한다. 알-무스탄 시리야 박물관 앞에서 책을 팔고 있던 야흐아 후세인(22)은 "전쟁할 돈이 있으면 가난한 사람에게 나눠주라"며 미국을 비난했다.
군인과 경찰뿐 아니라 시내에서 만난 일반인들의 항전의지는 강했다. 특히 젊은이들의 의지는 확고했다. 알-사둔 거리 한 편에 설치된 징병소에서는 청년들이 입대를 신청하면 현장에서 군복을 나눠주고 있었다. 한 시간가량 기자가 지켜보는 동안에도 30∼40명이 자원해 즉석에서 군인으로 변신했다.
바그다드 중심가 알-타흐리르 광장(해방광장)에서 근무하는 무장경찰 아흐메드 샤이드의 목소리에서는 패배에 대한 두려움을 느낄 수 없었다. "91년 걸프전에서 미국 놈과 싸우는 노하우를 얻었다. 미국 놈들은 공중에서 폭격이나 하는 겁쟁이기 때문에 시가전에서 1 대 1로 맞붙으면 우리가 이길 수 있다."
/바그다드=황유석특파원 aquariu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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