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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등급 사수" 9일간 긴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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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등급 사수" 9일간 긴박

입력
2003.03.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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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오전 10시 재정경제부 권태신 국제금융국장 사무실. 1시간 전 다급하게 면담신청을 했던 국제 신용평가기관 무디스의 톰 캘러 아시아지역본부장 등 고위간부 3명이 들이닥쳤다. 평소 권 국장과 친분이 있던 이들은 "내주 초(10일) 뉴욕 본사에서 등급 조정을 위한 회의가 열리는데 분위기가 부정적"이라고 전했다.내주 초면 불과 5일 뒤. 재경부에는 비상이 걸렸다. 즉시 김진표 부총리와 청와대에 보고했다. 이라크전쟁 가능성과 한반도의 긴장고조로 경제여건이 악화하는 상황에서 신용등급마저 떨어진다면 치명타로 작용할 게 뻔했기 때문이다.

청와대도 긴박하게 움직였다. 노무현 대통령은 수석비서관회의 등을 거쳐 7일 반기문 외교보좌관과 국방부 차영구 정책실장(육군 중장), 재경부 권 국장 등 6명으로 구성된 대표단을 뉴욕에 급파하기로 결정했다.

재경부는 "10일 아침 방문할 테니 등급 조정회의를 늦춰달라"고 무디스측에 사정했고, 무디스는 "오는 건 좋지만, 비밀을 유지해 달라"고 요구했다. 한국정부의 요구로 회의가 연기됐다는 사실이 사전에 알려지면 국제금융시장에 엄청난 파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대표단은 9일 오전 9시 인천공항 라운지에 모여 대책회의를 가진 뒤 11시 뉴욕으로 출발했다.

10일 아침(현지시간) 뉴욕 월가에 자리잡은 무디스 본사에는 긴장감이 흘렀다. 등급 조정회의에 참석하는 9명의 멤버 중 8명이 대표단을 기다리고 있었다. 무디스는 "북한의 핵 개발 의도가 명백히 드러났고 미국이 영변 핵 시설을 폭격할 것이라는 구체적인 정보도 갖고 있다"며 등급 하향조정을 강행하겠다는 입장을 보였다. 절대절명의 위기였다.

이 때 국방부 차 실장이 나섰다. 그는 유창한 영어로 북한군의 배치상황과 최근 움직임 등 1급 비밀까지 제시하며 전쟁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무디스측의 표정이 조금 달라졌다. 그들은 "이렇게 한국처럼 신속하고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나라를 보지 못했다"며 "며칠간 더 생각해본 뒤 결정하겠다"고 밝힌 뒤 자리를 떴다.

대표단은 S&P, 골드만삭스, 살로먼스미스바니 등을 잇따라 방문하는 등 뉴욕에서의 강행군을 끝내고 11일 인천을 거쳐 홍콩으로 이동했다. 6명 모두 해외출장 경험이 누구보다 풍부한 관료들이었지만, 한국을 재경유하는 출장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대표단이 세계 3대 신용평가기관 중 하나인 영국 피치사 아시아지역본부를 방문해 북핵 문제와 한·미동맹에 대해 열변을 토하고 있던 13일 오전 11시. 권 국장의 휴대폰이 울렸다. 무디스의 한국 책임자인 토머스 번 국장이었다. "축하드린다. 무디스는 북핵 문제가 더 악화하지 않는 것을 전제로 현재의 신용등급을 유지하기로 했다." SK 분식회계 사태로 연일 요동을 거듭하며 위기감에 휩싸여있던 금융시장은 13일 무디스의 신용등급 유지 발표 소식이후 안정세로 돌아서기 시작했다.

/고재학기자 goindo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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