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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 변경(辨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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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3.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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렁청진 편저·김태성 옮김 더난출판 발행·2만5,000원

조조의 부하 사마의가 소심해서 전장에 나서지 못한다는 소리를 듣고 제갈량이 부인네 의복을 담은 선물을 보내 놀렸다. 분을 삭이면서 사마의가 제갈량의 부하에게 물었다. "승상께선 어떠신가?" "매일 밤늦게 일하십니다. 곤장 스무 대가 넘는 형벌에 관한 일은 손수 처리하시지요." 사마의가 웃으며 말했다. "제갈량이 충신이요 뛰어난 전략가인 것은 사실이나 남을 믿지 못하는 것은 커다란 흠이지. 지나치게 세심해서 모든 일을 자신이 직접 챙기려 드는 것이 문제야. 남을 믿지 못하는 것은 윗사람이 가져야 할 자질이 아니지."

이 책은 혼란과 분열의 시대였던 중국 위진남북조 시기 쓰여 인물 품평 교과서로 널리 알려진 유소(劉邵·189∼244)의 '인물지(人物志)'에 기초하고 있다. 하지만 평가 대상이 훨씬 넓어져 청조 말기까지 여러 인물을 추가한 현대판 신 인물지다. 중국 역사와 인물사 관련 책을 주로 써온 저자는 특히 인재 활용이라는 조직 관리법에 초점을 두고 이 책을 썼다. 그래서 멀리 하 왕조 시조 우왕부터 청 말기 정치가 증국번까지 책에 등장하는 역사 속의 중국 지도자 60여 명이 '인재의 특성' '인재의 장단점을 보는 법' '인재 배치 요령' '인재 감정의 오류' 등 10개 범주에 따라 재배치됐다. 물론 유소의 '인물지' 못지 않은 흥미로운 일화가 곁들여졌다.

'인재의 특성'이라는 제목의 첫 장에 등장하는 제갈량 사례는 '지도자란 혼자서 다 잘 할 필요가 없다'는 메시지를 담았다. 명재상이 명군을 만든다는 점을 보여주는 당 초기 재상 방현령의 이야기, 강경한 것은 결코 부드러움이나 겸양을 이기지 못한다는 교훈을 담은 전국시대 조나라 장군 염파와 재상 인상여 일화 등도 재미있다.

저자는 여러 인물을 통해 충직과 청렴결백을 인재의 대단한 미덕으로 추천하고 있지만, 삼국시대 동오의 재상 장소처럼 충직함에도 불구하고 너무 완고하고 도량이 좁은 사람을 중용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지적한다. 중국 전쟁사에서 유명한 사례로 거론되는 춘추전국시대 장군 손빈과 방연 사례는 누가 진짜 인재이며 누가 가짜인지 감별하는 기준에 대한 이야기이다. 자신과 싸워 이길 줄 알고 냉정과 객관의 태도로 일관한 손빈을 명성과 허욕, 지나친 탐욕에 물든 방연은 단지 정치적으로만 잠깐 이길 수 있을 뿐이다.

인재술이라는 주제말고 이 책에서 또 하나 새롭게 볼 것은 역사 속의 인물을 새롭게 해석한다는 점이다. 역사란 시대에 따라 새로 해석될 수 있다고 가정한다면 "왜 우리는 조조가 난세의 간웅이 아니라 부득이한 상황에서 대를 위해 소를 희생했던 뛰어난 전략가였다고 생각하지 못하고, 왜 제갈량의 지혜만 보고 그의 지나친 고집과 의심은 발견하지 못한 것일까"하는 역자의 말은 설득력이 있다.

다만 이 책의 기본 텍스트인 '인물지'가 조조의 인물 중시 정책을 뒷받침하기 위해 쓴 책이라는 점을 감안해야겠다. 유소는 박학하고 꼼꼼한 태도로 조조의 눈에 들어 위나라에서 30년 동안 조조의 비서랑(秘書郞·비서실장 격)을 지냈다. 조조의 인재술을 높이 산 점 등은 그런 유소의 시각이 반영된 것이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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