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밤(한국시간) 요르단 국경도시 알-카라마를 거쳐 이라크에 들어서자 팽팽한 긴장감이 온 몸을 엄습했다. 버스를 타고 바그다드까지 500여 ㎞를 밤새 달릴 때도 긴장감은 풀리지 않았다. 어느 순간 전쟁이 발발해 내가 탄 버스가 미군 폭격의 표적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10시간 가까이 달려 13일 새벽 바그다드 외곽에 들어서자 처음 눈에 띈 것은 승객을 검문하는 무장 군인과 경찰이었다. 택시를 타고 시내로 들어서자 엄습했던 긴장감은 야릇한 느낌으로 변했다. 전쟁과 뜻밖으로 여겨질 만큼 평범한 일상이 공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바그다드 시내 도로 주변과 건물 모퉁이는 모래주머니를 쌓아 만든 벙커들이 임박한 전쟁을 알리고 있었다. 하지만 벙커를 놀이터 삼아 노는 소년들과 거리를 지나는 시민들의 표정에서는 전쟁의 그림자를 느끼기 힘들었다.
택시 운전사 압둘라 카심(43)은 "전쟁의 공포 속에서 산 지가 1년이 넘었다"며 "처음에 겁이 났지만 이젠 만성이 됐다"고 말했다. 그는 "요즘 들어 외국기자들을 태워 수입이 쏠쏠하지만 기름을 구하기가 어렵다"며 은근히 고충을 털어 놓았다. 그는 전쟁에 대비해 시민들의 기름 사재기가 극성이라며 "기름을 구하기 위해 주유소에 웃돈을 줘야 한다"고 말했다.
바그다드시는 조그만 구시가지와 이를 둘러싸고 새로 조성된 신시가지로 구분돼 있다. 시내를 관통해 흐르는 티그리스강을 따라 대통령궁과 공화국수비대 본부, 국방부를 비롯한 정부 각 부처 건물과 의사당이 흩어져 있다.
택시 기사에게 대통령궁 근처로 가자고 하자 "그 쪽은 통제가 심해 곤란하다"며 고개를 저었다. 바그다드 대학으로 향하는 도로변 곳곳의 건물 옥상에는 대공포 포신이 삐죽이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바그다드 대학은 정문에 나붙은 '반미, 반제국주의'와 '사담 만세'플래카드를 제외하면 표면적으로 전운을 느끼기 어려웠다. 하지만 대학생들의 태도는 달랐다. 한 학생은 한국에서 왔다고 하자 "한국은 누구 편이냐"고 되물었다.
의사당 인근에 있는 알-라시드 호텔은 각국의 취재진을 제외하면 한산했다. 호텔 직원은 전쟁이 임박해 오면서 있던 외국인들도 대부분 떠났다며 "기자들 외에는 숙박객의 발길이 거의 끊겼다"고 말했다.
알-라시드 호텔에서 택시로 10분 거리인 사담 그랜드 모스크(이슬람 사원)에서는 성전을 촉구하는 설교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사원 앞 공터에서 엎드려 기도하던 한 중년 남자는 "미국과 부자들에 모두 분노를 느낀다"고 외쳤다. 이라크 부유층이 최근 줄줄이 외국으로 도망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자신도 전쟁이 두렵다며 "가족과 함께 요르단이나 시리아로 가고 싶지만 그만한 돈이 없다"고 말했다. 전쟁을 앞둔 바그다드는 표면적인 안정에도 불구하고 공포감이 역력히 나타나고 있다.
/바그다드=황유석특파원 aquariu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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