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과 김진표 재경부 장관이 각각 김각영 전 검찰총장을 만난 지난 4일과 5일 이후 SK그룹 분식회계 혐의에 대한 검찰 수사기조가 눈에 띄게 누그러져 수사외압 의혹이 커지고 있다.검찰 수사팀은 지난달 17일 최태원 SK(주) 회장 집무실 등에 대한 압수수색과 함께 본격 수사에 착수, 6일 만에 최 회장을 구속했다. 또 SK 재무자료 분석 인력을 2배로 늘리는 등 분식회계 혐의를 집중 수사, 불과 3∼4일 만에 1조4,000억원대의 분식 혐의를 포착했다. 지난달 27일 본보 보도로 공개된 SK 분식회계 수사는 이때부터 요동을 쳤다. 검찰 관계자는 "당시 경제계는 물론 곳곳에서 문의가 빗발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수사팀은 지난 2일 수사 브리핑에서 손길승 SK그룹 회장의 사법처리와 관련,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 지위를 고려하느냐"는 질문에 "법은 만인 앞에 평등하다"며 고강도의 사법처리를 예고했다. 이날 이근영 금융감독위원장은 사건 주임검사인 이석환 검사에게 전화를 했다. 수사팀은 4일 오전에도 "분식 규모가 조(兆) 단위에 이르면 SK글로벌이 쓰러질 수도 있다"는 질문에 "환부는 도려내야 한다"며 강경한 수사기조를 이어갔다.
그러나 외압의 당사자로 지목되고 있는 김 부총리와 이 위원장이 이날 오후 김 전 총장을 만났다. 다음 날인 5일부터 검찰의 수사 기조와 태도에 뚜렷한 변화가 나타났다. 더욱이 이날 노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김 전 총장을 만나 임기 보장을 시사하고 검찰 개혁을 위해 애써달라고 당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손 회장이 당초 일정보다 하루 늦게 이날 검찰에 출두했다.
검찰은 이날 오후 브리핑에서 "손 회장을 비롯해 더 이상 구속자는 없다"고 못박았으며, 6일에는 "경제가 어렵다"고 말하는 등 상황론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분식규모는 "계속 조사중"이라고만 밝혔다. 검찰 주변에서 수사 축소설이 나돌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이었다.
9일 대통령과의 토론회에서 이석환 검사가 외압설을 주장한 이후 검찰 수뇌부가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은 석연치 않은 부분이다. 김 전 총장은 12일 밤 "재임기간 중 사건에 대해서는 입을 다무는 게 예의"라며 언급을 피했으며 같은 날 대검 마약부장으로 전보된 유창종 전 서울지검장도 "노코멘트"라는 말로 일관했다.
유 전 지검장은 다만 "사람에 따라 외압으로 느낄 수 있는 전화는 많았다"고 시인했다. 또 박영수 서울지검 2차장은 수사는 잘했어도 결과가 나쁘면 다칠 수도 있다는 압력성 전화를 받은 것은 시인했지만 실체는 공개하지 않아 외압 주체와 내용 등을 둘러싼 의혹들은 계속 증폭되고 있다.
/강훈기자 hoon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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