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비스시장 개방 문제를 논의하는 세계무역기구(WTO) 도하개발아젠다(DDA) 본격 협상을 앞두고 정부가 1994년 우루과이라운드(UR) 협상을 잘못 마무리해 위성방송 프로그램 공급업(PP) 분야의 개방을 사실상 허용했다는 주장이 제기돼 논란이 일고 있다.논란의 발단
정부가 UR 협상 때 체결한 시청각서비스 양허 협정에는 '영상 및 비디오 제작·배급 서비스' 분야를 유선방송(케이블TV) 배급을 제외하고 전면 개방한다고 돼 있다. 방송위원회는 최근 "케이블TV만 예외로 한 만큼 위성방송에 영상물을 공급하는 PP는 이미 자동적으로 시장개방이 이뤄진 것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방송위원회의 해석이 맞다면 WTO 회원국들이 위성방송 PP 시장 개방을 요구할 경우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이번 협상에서 방송 부문을 양허(시장개방) 대상에서 제외키로 한 정부 방침은 무의미해진다. 또 위성방송 PP의 외국인 소유 지분을 최고 33%로 제한한 방송법의 개정도 불가피하다.
그러나 외교통상부와 문화관광부는 "UR 협정에서 케이블TV는 물론, 위성방송 PP도 시장개방이 이뤄지지 않았다"며 "자동 개방 주장은 협정 문구를 자의적으로 해석한 것"이라고 즉각 반박했다.
무엇이 문제인가
논란은 '영상 및 비디오 제작·배급 서비스'가 가리키는 업종이 무엇인지에 대한 해석 차이에서 비롯했다. 유엔 산업분류(UN CPC)를 적용한 양허표에는 '제작'(분류번호 96112)은 '극장상영과 방송 또는 판매·대여를 위한 필름·비디오 테이프 영상 제작 서비스'로, '배급'(96113)은 '영상물을 공공오락이나 방송산업에 판매·대여하는 서비스'로 규정하고 있다.
윤석배 방송위 정책실 차장은 "UN CPC에 따르면 케이블TV나 위성방송에 영상물을 공급하는 PP는 '영상물 제작·배급 서비스'에 당연히 포함된다"며 "UR 협상 때 위성방송을 미처 생각하지 못해 케이블TV만 예외를 적용, 결과적으로 개방을 허용하는 우를 범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PP가 이 서비스에 해당하지 않는다면 굳이 케이블TV에 대한 배급은 개방 대상에서 제외한다는 단서 조항을 둘 필요가 있었겠느냐"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이해돈 문화관광부 통상담당 사무관은 "케이블 채널을 임대해 프로그램을 편성하는 PP는 CPC 분류 7530에 해당하며, 위성방송 PP는 CPC 분류에 아예 포함되지 않아 협상 대상이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유선방송 예외 규정을 둔 것은 외국 영화가 케이블TV에 배급되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였다"며 "2001년 7월 미국과의 양자협상 당시 미국도 PP가 협상대상에서 빠져 있다는 점을 인정했다"고 덧붙였다.
민동석 외교통상부 DDA 심의관도 "UR 협상 당시 국내에 없었던 위성방송처럼 기술 발전에 따라 새롭게 등장한 서비스는 당연히 기존 양허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 것이 상식"이라고 말했다.
논란이 확산되자 방송위는 13일 오후 해명자료를 통해 "방송위와 문화관광부의 협의 과정에서 얘기가 잘못 흘러 나간 것"이라며 "DDA 양허안에서 방송 부문은 UR 양허 이상으로 개방하지 않는다는 데 이견이 없다"고 밝혔다. 방송위는 그러나 "영상물 제작·배급 서비스에 PP가 해당하는지 여부는 전문가 및 관련 부처와 긴밀히 협의해 정리하겠다"고 덧붙였다.
전문가·업계 견해
전문가들의 의견도 엇갈린다. 최양수 연세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PP는 채널공급업자(SO)에 프로그램 제작과 편성 서비스 전반을 제공하는 사업자로, 영상물 제작·배급 서비스에 당연히 해당된다"고 밝혔다. 반면 UR 협상 자문에 임했던 성극제 경희대 아태국제대학원 교수는 "양허표를 완전히 잘못 이해한 주장으로 외국에서도 이런 식으로 해석한 예가 없다"고 반박했다.
스카이라이프 관계자는 "위성방송 PP 분야가 개방된다면 대규모 PP를 제외한 대다수 PP 업체는 큰 타격을 입을 것"이라며 "정부는 해당 조항을 정확히 해석해 문제가 있다면 시급히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희정기자 jaylee@hk.co.kr
김영화기자 yaa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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