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인데 눈이 옵니다. 엄청나게 내리는 눈 속에 금세 산이며 들판이 하얗게 변합니다. 저녁 찬거리가 마땅치 않아 무청 시래기라도 한 타래 삶을까 하고 사랑방 아궁이에 불을 지핍니다.솔가리 한 움큼 집어넣고 그 위에 손도끼로 자잘하게 패놓은 아카시아 나무 장작을 올려놓고서 성냥불을 그어 댑니다. 성냥통을 부뚜막에 그냥 올려놓았더니 눅눅해져 쉽게 불이 일어나질 않습니다. 라이터를 갖다 대니 '타닥타닥' 향긋한 솔내를 풍기며 불이 타오릅니다.
가마솥 언저리로 눈물이 흐르며 '쉬-익' 하얀 김을 내뿜을 때까지 한참 불을 때야 합니다. 겨울을 넘긴 무청 시래기는 급하게 삶으면 질겨 제 맛이 나지 않습니다.
큰 일이라도 낼 것처럼 퍼붓던 눈이 어느새 그칩니다. 봄 눈 녹듯이 한다는 말이 생각납니다. 마당엔 벌써 질척질척하니 눈이 녹아 꽤나 어설픕니다. 가마솥에선 '슈욱 쉬-익'하며 시래기 삶는 냄새와 나무 때는 냄새가 어울려 마음을 한없이 편안하고 넉넉하게 해줍니다.
방안에서 종이 오리기를 하며 놀던 딸아이가 방문을 벌컥 열더니 소리칩니다. "엄마! 잉걸이 나오면 고구마 꿉어 도∼고." 벌건 숯덩이가 고구마에 닿지 않게 한 편으로 밀어 놓고 재 속에 몇 개의 고구마를 묻어둔 다음 구산 댁 비닐하우스에 냉이 한 움큼 캐러 나섭니다. 군데군데 쑥이 뾰조록이 고개를 내밀고 꽃다지는 노란 꽃을 매달고 있습니다. 하우스 속이라서 그런지 냉이는 벌써 꽃대가 올라와서 못 먹게 된 것이 더 많습니다.
그새를 못 참고 딸아이가 아궁이 앞에서 부지깽이로 쑤석쑤석 군고구마를 찾아냅니다. 고구마는 알맞게 익어서 달큰한 냄새를 풍기고 가마솥의 시래기는 잘 물러서 빨리 건져주길 기다립니다.
이제 농사철입니다. 부지런한 고노골 댁은 섣달 그믐께 고추씨를 물에 불렸다고 하던데 파종했겠지요. 우리 집도 많이는 아니지만 집 앞 텃밭에 무언가 씨앗 뿌릴 준비를 해야겠습니다. 무슨 씨앗이든지 올 한해도 잘 자라서 가을에 수확의 기쁨을 안겨주길 바라면서 말입니다. 해가 꽤나 많이 길어졌습니다.
/정금희·경북 봉화군 법전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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