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이 아니라 바다예요." 12일 섬진강 하구에서 15㎞쯤 올라온 전남 광양시 진월면 월길리. 섬진강 주변으로 매화가 활짝 펴 봄소식을 알렸지만 농민들은 오히려 울상을 짓고 있었다.섬진강을 지척에 두고 양상추, 수박 등 비닐하우스 재배로 소득을 톡톡히 올렸던 농가에 몇년 사이 심상찮은 일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 강 주변 한 비닐하우스를 들여다보자 파릇파릇해야 할 양상추가 샛노랗게 변해 있었다. 주민 김종한(48)씨는 "섬진강에서 300m쯤 떨어진 곳에 판 지하수에서 짠물이 올라와 모종을 다 망쳤다"며 "강 옆에 바닷물이 웬 말이냐"고 허탈해 했다. 하우스 옆에서 뿜어져 나오는 지하수를 조금 마셨는데도 독한 소금기로 토할 지경이었다.
강 중류까지 바닷물 올라와
바닷물 역류로 섬진강 하류 생태계가 뒤엉키고 있다. 1990년대 이후부터 하구 일대는 아예 바다로 변했고, 이제는 하구에서 20여㎞ 지점인 하동읍까지 바닷물이 올라온다.
광주대 양승렬 교수 연구팀의 조사에 따르면 홍수기를 제외하고는 강 하구에서 7∼8㎞ 지점까지 염분도가 바다와 다름없는 20psu 이상을 보였고, 18㎞ 지점인 섬진교까지 바닷물의 영향권인 0.5psu 이상이었다. 최근에는 강 중류인 다압취수장까지 바닷물이 영향을 미쳐 취수장을 위쪽에 다시 짓고 있다.
하구 생태계 교란, 재첩도 감소
용수 고갈도 문제지만 강 하구 생태계까지 위협받고 있다. 하동어민회장 황규현씨는 "민물장어, 잉어 등은 아예 자취를 감췄고, 하구 갯벌도 다 죽었다"며 "대신 전어, 도다리 같은 바닷고기만 찔끔찔끔 잡힌다"고 한숨을 쉬었다.
특히 섬진강 특산물로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곳에서 서식하는 재첩도 위기에 처해 있다. 바닷물로 재첩서식지가 하동군 사포마을-노하마을-하동읍으로 쫓겨 갔고 생산량도 절반 이상 감소했다. 하동 수협관계자는 "7∼8년 전에는 연 600∼700톤 가량 생산됐지만 지금은 300∼400톤 수준"이라며 "'물반 재첩반'이란 말도 이젠 옛말이 됐다"고 말했다. 재첩산지로 이름을 날렸던 노하마을 주민들은 생계기반을 잃은 처지. 한 주민은 "재첩도 다 죽고 민물고기도 없어졌지만 바닷고기가 풍부한 것도 아니다"며 "강도 바다도 아닌 이상한 물"이라고 말했다.
수량감소와 골재채취가 원인
원인은 섬진강 수량이 감소한데다 하류의 모래 채취 등. 광양환경운동연합의 박주식 사무처장은 "섬진강댐, 하동댐 등에서 물을 전용, 수량이 준데다 80년대 후반 들어선 광양제철소가 섬진강 모래로 메워지는 등 골재 채취가 끊이지 않았다"며 "강바닥이 낮아져 바닷물이 밀고 들어오면서 생태계가 파괴됐다"고 말했다. 섬진강 하구로 연결되는 광양제철소 앞 바다에서는 여전히 컨테이너 부두 개설을 위해 준설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하동·광양=송용창기자 hermee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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