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은 북핵 사태가 최악으로 치달을 경우 '북핵 불허'와 '전쟁 절대반대' 중 양자택일을 해야 하는 딜레마에 처할 수도 있다. 이러한 대외적인 양자택일은 아직 모면할 가능성과 시간적 여유가 있는 편이다. 그러나 노 대통령은 당장 대내적으로 임박한 또 다른 양자택일의 상황에 처해 있다. 대북송금 특검법안에 대한 거부권 행사 문제다.거대 야당이 대북송금 특검법안을 통과시킨 이후 매일 이 법안을 둘러싼 분란이 계속되고 있다. 노 대통령은 이에 대한 정치적 타협을 도출하기 위해 여야 영수회담을 갖는 등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나 아직까지 뜻을 이루지 못했다.
노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여부는 사실상 중대한 정치적 선택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거부권을 행사하면, 신춘 정국은 경색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정국의 경색은 북핵과 연관된 국론분열, 노사문제 등 다른 갈등의 해법을 위해서도 참여정부에게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무엇보다 노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경우 탄핵 소추도 불사하겠다는 등의 반발이 야당 일각에서 나오고 있는 마당이다. 반면에 특검법안을 수용하면, 민주당은 최악의 경우 분당될 수도 있다. 민주당 내에서는 이미 당 개혁 및 당권 문제로 분당이 거론된 바 있다. 이런 상황에서 특검법안의 수용은 민주당내 구주류와 신주류의 갈등을 심화시킬 것이 뻔하다.
간단히 말해 노 대통령은 내년 총선을 앞두고 '대화와 타협의 정치'와 '민주당의 결속' 중에서 양자택일을 해야 하는 딜레마에 처하게 된 셈이다. 이 선택은 바로 내년 4월 총선 전략 및 참여정부의 진로와 직접 연결된다. DJ와의 차별화를 통해 총선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뚜렷한 확신이 서지 않는 한, 당내 DJ 옹호세력을 완전히 배제하기 어렵다는 게 민주당 신주류의 고민이다. DJ와의 차별화 전략은 기존의 지역주의 구도를 돌파할 수 있다는 기대를 갖게 하지만, 호남의 상당한 지지층이 이탈할 수도 있다는 부담을 안고 있는 것이다.
야당의 입장에서는 특검 집행이 내년 총선에서 자신들에게 유리하다고 판단하는 한, 쉽사리 특검법을 양보하지 않을 것이다. 물론 이 같은 정략적 판단은 특검법 실시 결과가 총선에서 결정적 이슈가 된다는 전제하에서다.
대외적 및 대내적 양자택일의 문제는 서로 연관되어 있고 유사성도 있다. 대외적 양자택일의 문제에 있어서 남북 공조와 한미 공조의 여부가 핵심 변수이듯이 대내적 양자택일에서도 여권내 신· 구주류의 화합과 국회에서 여야의 협력이 결정적인 요인이 된다. 북한이 특검 문제에 간섭을 시도하고 있으나, 1992년 발효한 남북기본합의서가 유효하다면, 이러한 시도는 내정간섭이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노 대통령의 특검법 거부 여부는 아직 시간적 여유가 있는 대외적 선택의 문제를 결정하는데 있어서도 경험과 교훈이 될 수 있다. 따라서 노 대통령은 정략적인 요소나 가변적 여론 향배에 따르기 보다는 참여정부의 기본적 목표와 원칙적인 정당성에 입각해 거부권 행사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대통령은 사안에 따라서는 여론조사결과를 추수하기 보다는 정치적 결단과 설득으로 여론을 이끌어 나가야 한다.
거부권 행사 여부는 참여정부의 진로를 결정하는 '절반의 시작'이므로, 무엇보다 취임사에서 제시한 국정 청사진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즉 남북문제를 풀어가고 동북아 중심국가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남한 내부의 통합과 개혁이 선행되어야 하는 것이다. 지금의 정치구도에서 개혁과 통합은 야당과 대화 및 협력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당당한 외교는 튼튼한 내치에 의해 뒷받침되어야 가능하다.
야당도 북핵 사태와 경제난국 속에서 특검법안에 완강히 집착해 대치정국과 국론분열에 발을 담그게 되면 원내 제 1당의 소임을 다하지 못한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 국 영 성균관대 사회과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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