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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발전소를 찾아서](8) 다큐제작 전문사 리스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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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발전소를 찾아서](8) 다큐제작 전문사 리스프로

입력
2003.03.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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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니까 화사하고 밝은 것 좀 했으면 좋겠어." KBS 2TV 휴먼다큐 인간극장 팀을 맡고 있는 리스프로의 박은희(46) 제작본부장이 제안을 하자 아이디어 회의에 참석한 PD, 작가 등 8명의 팀원이 그동안 취재해 온 보따리를 풀어놓기 시작한다. "요가하는 부부 이야기는 어떨까요. 시어머니 같은 남편과 대범한 아내 이야기인데…." (윤양석 PD) "누구 관점으로 가는 거야. 좀 더 생명력 넘치는 사람 이야기가 없을까."(박은희 본부장) "한국인 남자와 결혼한 중국인 세 자매는 어떨까요."(오현정 작가)

이어 성악도 출신의 30대 여성 수산시장 중매인, 중학교에 들어간 농부 아저씨, 이장이 된 스님, 초등학교에 아이를 넣은 시각장애인 부부 등 각양각색의 아이디어가 줄을 잇는다. 그때마다 박은희 본부장은 "애환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애환을 어떤 방법으로 극복하는지를 보여주는 것이 인간극장"이라고 강조했다.

인간극장은 VJ특공대, 영상기록 병원24시, VJ클럽, 현장르포 제3지대 등과 함께 6㎜ 디지털 카메라로 제작한 현장다큐 프로그램 전성시대를 이끌며 시청률 경쟁과 선정성의 늪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방송계에 신선한 생명력을 불어넣고 있다.

이중 인간극장과 현장르포 제3지대를 제작하는 리스프로는 최근 방송계에서 가장 주목 받는 독립 프로덕션이다. "한 번도 실패한 프로그램을 만든 적이 없다"는 이동석(55) 총감독의 자신감처럼 업계에서는 리스프로를 다큐 제작의 명문으로 꼽는다.

리스프로는 외주 제작사로는 드물게 9시 뉴스, 드라마 등과 경쟁하는 황금 시간을 배정 받아 매주 월∼금요일 저녁 8시50분 인간극장을 방송하고 있다. 특히 1회성 다큐가 아니라 5부 연작이라는 새로운 실험을 시도, 평균 11∼12%대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선전하고 있다.

'그 여자, 하리수' 편을 통해 연예인 하리수가 처음으로 방송을 탔고, '그 산골에 영자가 산다' 편을 통해 강원도 산골의 무공해 처녀 영자가 유명세를 탔다. 영자는 훗날 아버지를 비명에 잃고 절로 들어가 인간극장을 또 한번 세인의 입에 오르내리게 했다. 현재 제3비전과 함께 번갈아 인간극장을 제작하고 있다. 현장르포 제3지대는 공중파 방송 최초의 6㎜ 카메라 르포라는 기록도 갖고 있다.

1973년 TBC에서 방송 생활을 시작한 이 감독은 30년 경력의 다큐 전문 PD 출신. KBS 교양제작부장을 끝으로 프리랜서 PD로 변신한 뒤 93년 리스프로를 설립하고 MBC '잊혀진 전쟁' '종군위안부' '스님, 성철 큰스님' 등 화제작을 만들었다. 리스프로의 또 다른 축은 '1세대 다큐 구성작가'로 불리는 박은희 본부장이다. 98년 10월 첫 회부터 현장르포 제3지대 팀장을 맡아 소재 발굴과 집필을 했고, 본부장이 된 이후에는 후배 작가를 키우고 있다. 현재 한국방송작가협회 이사다.

함께 참여하고 있는 다큐 구성작가의 면면도 리스프로의 유명세에 한몫을 하고 있다. 인간극장으로 2001년 한국방송작가상을 수상한 오정요, 조선왕조실록팀의 정영미, 특집 전문으로 KBS구성작가협회 회장을 역임한 권기경씨 등 방송가에서 내로라 하는 다큐 전문 작가 7명이 리스프로에 포진해 있다.

"대상의 삶이 치열한가, 진정성을 갖추고 있는가, 그러면서도 보는 이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가, 이 세가지가 인간극장 팀의 제작 원칙입니다." 박은희 본부장은 소재주의에 치우치지 않되 시청자의 구미를 끌어당기는 실마리를 건져내는 것이 고민이라고 설명한다. 괜찮은 소재가 있더라도 사전 조사 과정에서 허탕치기 십상이다. 두 대의 6㎜ 디지털 카메라가 편당 한두 달씩 개인의 사생활을 끈질기게 달라붙기 때문이다. 박 본부장은 "지난해 12월부터 두 달간은 무려 12번이나 사전조사 단계에서 제작을 포기했다"고 소개했다.

리스프로의 사전시사 시스템은 냉혹하리 만치 철저하기로 악명 높다. 두 달 가까이 취재대상과 함께 먹고 자기를 반복해 만들어 온 테이프도 사내에서 4차례의 사전시사를 통과해야만 공중파 방송을 탈 수 있다. 이 감독은 "안정적인 삶이 보장되는 제도권의 PD에 비해 이곳의 PD들은 경쟁에서 지지 않기 위해 치열한 작가정신을 키워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리스프로의 PD 14명 중에는 방송국 PD 출신이 한 명도 없다.

리스프로에도 고민은 있다. "제가 다큐 PD를 30년 했고, 박 본부장은 다큐 구성 작가를 20년 했어요. 다큐 한 편 만드는 데 1,000만원 안팎이 들지만, 드라마는 회당 제작비가 억대를 상회하고 있으니 교양이 푸대접 받고 있는 세상이지요."(이동석 감독)

올해로 리스프로가 설립된 지 10년, 오락프로가 판을 치는 방송계 풍토에서 6㎜ 카메라 하나 달랑 들고 현장을 누비는 이들이 다큐멘터리 정신을 올곧게 지켜나갈 수 있을지 지켜봐도 좋을 것 같다.

/김영화기자 yaa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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