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어데블'(Daredevil)의 주인공이 변호사라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낮에는 거물 조직원의 끄나풀에게 패소하는 힘없는 맹인 변호사지만, 밤에는 '정의의 악마'로 불리며 악의 무리를 처단한다. 변호사가 많다는 건 그만큼 죄를 짓고도 풀려 나가는 인간이 많다는 뜻일 수도 있다. '데어데블'은 국가 권력이 실현할 수 없는 정의가 개인적 방식으로라도 구현되기를 바라는 소시민의 갈망을 상징한다.미국의 유명 만화출판사인 마블 코믹스의 동명 만화를 원작으로 한 '데어데블'은 눈 먼 변호사라는 주인공 캐릭터를 뉴욕 뒷골목의 음습한 풍경에 배치해 팀 버튼의 '배트맨'이 주는 암울하고도 몽롱한 분위기를 더욱 사실적으로 느낄 수 있도록 했다. 여기에 중국 무협에서 차용한 다양한 액션으로 액션 블록버스터가 갖춰야 할 볼거리를 풍성하게 갖추었다.
유독성 폐기물을 뒤집어 쓰고 실명을 한 어린 매튜는 다른 감각이 초인적으로 발달하게 된다. 성인이 된 매튜(벤 애플렉)는 죄없는 사람만 변호하는 양심 변호사. "정의의 여신은 눈 멀었지만, 양심의 외침은 들을 수 있다"는 매튜의 변론은 자신을 변호하는 말이기도 하다.
그는 억만장자 사업가 나치오스의 딸 엘렉트라(제니퍼 가너)와 사랑에 빠지지만 아버지의 원수이자 뉴욕 최대 조직의 보스인 킹 핀(마이클 클라크 던컨)과 그의 하수인 불스아이(콜린 파렐)는 또 다시 매튜를 불행에 빠뜨린다. 불스아이는 나치오스를 살해하고 엘렉트라는 아버지를 죽인 범인이 데어데블이라고 오해한다. '부성 콤플렉스'를 상징하는 자신의 이름 그대로 엘렉트라는 아버지의 원수를 갚기 위해 데어데블과의 일전을 준비한다.
"겁이 없다는 것은 희망이 없다는 것" "세상 어디에도 진정 죄없는 자는 없다"는 킹 핀의 말이나 사적 응징을 경고하는 신부에게 "정의는 죄가 아니다"고 맞서는 매튜의 말은 정의에 대해 다양하게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하지만 잔인한 폭력이 난무하는 것을 보면 이런 언쟁은 폭력성 논쟁을 피해가려는 설정으로 보일 뿐이다.
물론 영화가 보다 신경을 쓴 것은 액션이다. 데어데블과 대결하는 불스아이가 유리창을 깨뜨려 조각난 유리를 차곡차곡 받아 던지는 대목, 처음 만난 매튜와 엘렉트라가 학교 운동장에서 '일합'을 겨루는 대목 등은 '취권' '와호장룡' '매트릭스'로 이어지는 중국 무협의 변형이다. 무술감독이 중국 무술감독 위안허핑의 동생(위안청옌)임을 감안하면 중국 액션 차용은 의도된 연출이다.
매튜의 시신경이 손상되는 과정이나 비를 맞는 엘렉트라의 모습을 매튜가 느끼는 과정을 묘사한 독특한 CG 연출이 돋보이고, 만화 소재 영화의 악당 중 가장 돋보일 만한 불스아이 캐릭터가 인상적이다. 미국에서 2월14일 개봉, 첫 주말 3일간 제작비(7,500만달러)의 절반이 넘는 4,730만달러를 긁어 모았다. 21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박은주기자 jup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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