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빈 스페이시와 케이트 윈슬렛 등의 호화 캐스팅, 개성 넘치는 연기, 적절한 서스펜스, 그리고 무엇보다 사형제 폐지라는 민감한 화제. '데이비드 게일'은 더 바라서는 안 될 듯한 영화다. 감독은 '미드나이트 익스프레스' '버디' 등 정치성 강한 영화를 통해 자신의 세계를 구축한 영국 출신의 앨런 파커.사형제 폐지 운동가이자 촉망 받는 텍사스대 교수 데이비드 게일(케빈 스페이시)이 졸지에 사형수가 되어 죽음을 기다린다는 내용이 충격적이다. 게일이 뒤집어 쓴 혐의는 더욱 놀랍다. 게일은 사형제 폐지 운동의 평생 동지인 콘스탄스(로라 리니)를 강간한 뒤 수갑을 채우고 머리에 비닐 봉투를 씌워 질식사시킨 혐의로 사형을 선고 받는다. 영화는 비디오 테이프를 들고 숨이 끊어져라 벌판을 달리는 한 여기자를 따라 가면서 시작된다. 이 여자는 왜 허겁지겁 뛰고 있는가. 영화는 관객에게 하나씩 조각 정보를 던지며 수수께끼 같은 데이비드 게일의 삶으로 관객들을 끌어 들인다.
게일은 사형 집행 며칠 전 밀려 드는 인터뷰 요청 가운데 유독 '뉴스'의 기자 빗시(케이트 윈슬렛)를 지목하고 그 대가로 50만 달러를 요구한다. 빗시는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다가 왜 게일이 자신을 골랐는지에 대한 궁금증과 특종 욕심에 두 시간씩 사흘 간의 인터뷰를 하기로 한다. 영화는 인터뷰를 통해 게일의 과거를 돌아봄으로써 과연 누가 어떤 범죄를 저질렀는지를 파헤친다.
전도양양한 게일의 삶은 고질적인 알코올 중독으로 하루 아침에 엉망이 된다. 술김에 제자를 성폭행한 혐의로 학교에서 쫓겨나고, 아내와 사랑하는 자식과도 생이별한다. 설상가상으로 유일하게 믿고 의지하는 동료 콘스탄스가 백혈병으로 쓰러진다. 그리고 얼마 뒤 살인범으로 체포된다.
영화는 살해 장면 일부를 담은 비디오 테이프를 미끼로 관객을 잡아 끈다. 게일은 사형제에 찬성하는 극우주의자들의 음모론을 제기하고, 빗시와 수습 기자 잭은 의문의 비디오 테이프를 발견한 뒤 게일의 '누명'을 벗기기 위해 전력을 다한다. 빗시 일행을 미행하는 누추한 카우보이 행색의 남자는 의혹을 증폭시킨다.
첫 장면부터 관객을 어리둥절하게 만드는 영화는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순간까지 관객의 섣부른 추측을 허락하지 않는다. 자신의 신념을 위해 헌신하는 콘스탄스(로라 리니)의 연기는 소름이 끼칠 정도로 빼어나다. 충격 자체인 마지막 장면은 사형 폐지론을 주장하는 이 영화의 긴박한 목소리로 들린다. 콘스탄스의 입을 통해 사형제 폐지의 논리를 펴고 있지만, 게일의 일관성 없는 모습이 그 논리를 희석하고 있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남는다. 21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이종도기자 ecri@hk.co.kr
■평론가 "혹평"… 관객 "호평"
'데이비드 게일'은 사형제 폐지를 주장하는 작품이지만 평론가와 관객의 의견은 분분하다. 영화는 급진적 사형제 폐지론을 담고 있지만 지나치게 스릴러물 구조에 기대 정치적 의도를 제대로 살리지 못했다는 게 중론이다. 사형제 존폐가 아니라 이 영화가 '과연 사형반대를 주장하는 영화인가'가 오히려 논란의 초점이 되고 있다. "스너프필름(실제 살인을 찍은 것)을 만들려고 했는지, 사형제 반대를 하려고 했는지가 분명하지 않다"며 정치성을 비판한 '시카코 트리뷴' '엔터테인먼트 위클리' 등이 대표적이다. 한술 더 떠서 "사형 폐지론자들을 엿먹이려 한 것 아니냐" ('신시내티 인콰이어러')는 비판까지 나왔다. 영화 속의 사형폐지론자들이 너무 과격하게 비치기 때문이다. 그러나 관객은 앨런 파커의 자극적 문제 제기, 로라 리니의 탁월한 연기를 비롯한 주역들의 연기에 높은 점수를 주었다. 미국 야후의 네티즌은 5점 만점에 3.7점, IMDB의 네티즌은 10점 만점에 6.6점을 주었다. '셰리'라는 네티즌은 '강력한 대본, 뛰어난 연기'를 높이 평가하며 '평론가들의 말에 영향을 받지 말 것'을 충고했다.
/이종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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