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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정부와 언론/노무현식 언론전쟁… 權-言 긴장감이 "팽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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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정부와 언론/노무현식 언론전쟁… 權-言 긴장감이 "팽팽"

입력
2003.03.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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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춘추관 기자실은 요즘 영락없는 '도떼기 시장'이다. 지난달 말 개방시스템 도입 선언 이후 150여명의 취재진이 한꺼번에 몰려 하루종일 시끌벅적한 시장판 분위기다. 엄숙한 '구중궁궐' 이미지는 사라진 지 오래. 6월 기자실 개조공사가 마무리되면 그마나 남아있던 언론사별 고정 부스가 없어지고 춘추전국시대가 된다.청와대 기자실은 노무현식 언론개혁의 전초기지이자 진원지이다. 이곳에서 첫 '전투'의 결과에 따라 새 취재시스템이 확대 적용될 것이기 때문에 각 부처가 성패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하지만 기자들은 물론, 홍보수석실을 비롯한 청와대 관계자들조차 하루하루를 겨우 넘기는 악전고투의 연속이다.

오전 9시가 조금 지나면 "수석보좌관 회의 풀(pool)입니다"는 기자실 여직원의 고함이 들린다. 기자들이 급식받는 학생들처럼 우루루 몰려가 회의내용이 적힌 복사용지를 받아들고 회사로 보고전화를 한다.

그리고는 오전11시 대변인 브리핑 시간을 목 빼고 기다린다. 청와대에 대한 별도 취재루트가 없기 때문이다. 발디딜 틈이 없는 춘추관 소회견실에서는 한 사람의 대변인이 기자들의 질문공세로 진땀을 흘리기 일쑤다. 기자들도 답답해 저마다 수석이나 비서관들에게 휴대전화를 건다. 견디다 못한 비서관들도 전화기를 대부분 꺼놓는다. "말로만 개방이지 청와대 문은 더 닫혔다" "우리에 가둬놓고 먹이주는 식이냐" 등 자조섞인 불만도 공공연하게 흘러 나온다.

언론 취재가 대변인실에 집중되다 보니 공보팀은 말 그대로 매일 매일이 전쟁이다. 송경희(宋敬熙) 대변인은 "하루종일 이어지는 청와대 회의와 행사내용을 내가 어찌 다 기억하느냐"고 항변도 한다.

가판구독 금지령으로 인해 대변인실의 근무행태도 크게 바뀌었다. 청와대 공보관계자들은 아침 7시께 기자에게 전화를 걸어 항의를 하기도 한다. 잠이 덜 깬 기자에게 "가판을 못 보는 것으로 돼 있으니 지금 항의한다"며 보도내용에 대한 불만을 터뜨린다. 조간신문 내용을 스크랩하느라 아침 6시에 출근하는 '새벽 별보기' 운동을 계속하던 직원들은 견디다 못해 요즘 인터넷으로 다음날 조간신문 PDF판을 '커닝'한다. 가판 신문을 보지는 않지만 같은 시간에 기사는 보는 셈이다. 이 같은 '고난'에도 불구하고 청와대측은 "권언유착을 없애고 개방화와 건전한 관계정착을 위해 초창기 시행착오는 불가피하다"고 강변했다. 업무 외적 관계도 크게 변했다. "기자들에게 술 사지 말라"는 노무현(盧武鉉)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청와대 간부와 기자들간 회식자리는 눈에 띄게 줄었다.

이 같은 변화는 예고편에 불과하다는 관측이다. 11일 국무회의에서 노 대통령이 '오보(誤報)와의 전쟁'을 선포한 이후 춘추관 안팎의 긴장감은 한껏 높아지고 있다.

/배성규기자 vega@hk.co.kr

노무현 대통령의 언론정책은 전쟁이다. 그는 해양수산부 장관시절 '언론과의 전쟁'을 선포하고 이를 위한 노력을 '제2의 6월 항쟁'으로 규정했다. 따라서 언론의 비판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하기 보다는 공세적으로 대처하고 있다.

노 대통령은 또 언론이 부당한 특권을 누리고 있다고 보고 있다. 이는 권력이 언론에 아첨을 했기 때문이며, 따라서 권(權)―언(言) 유착의 고리를 끊는 것이 언론개혁의 핵심이다.

그러나 노 대통령의 언론관은 매체별로 다르다. 신문에 대해서는 몇몇 '수구·족벌 신문'을 지적하며 부정적인 반면, 방송에 대해서는 우호적이고 인터넷 신문은 대안언론으로서 평가하며 굉장히 긍정적이다. 때문에 개혁 대상은 신문으로 좁혀지는 듯 하다.

노 대통령은 취임 즉시 정부부처의 신문 가판구독을 금지한 뒤 "기사 빼달라, 고쳐달라"는 식의 전화를 못하게 했다. 대신 신문의 잘못된 보도에 대해서는 정정보도 및 법적대응을 하도록 했다.

노 대통령은 대통령후보 시절인 지난해 6월 조선일보가 "남북관계 하나만 잘 되면 나머지는 깽판쳐도 된다"는 노 대통령의 말을 집중 보도하자 다음날 유세에서 "내가 천마디 중 한마디 쓰레기 같은 말을 했다고 그 말만 주워담는 신문은 쓰레기통"이라고 비난했다.

그러나 방송과 인터넷 신문에 대한 애정은 각별하다. 노 대통령은 4일 KBS 창사기념식에 참석, "방송이 없었더라면 제가 대통령이 될 수 있었을까요"라고 고마움을 나타내기도 했다.

노 대통령이 이 두 매체에 특별한 관심을 갖는 것은 "내 입으로 한 말이 그대로 전달된다"는 점 때문이라고 한다. 방송은 자신의 이미지가 그대로 나타나고 인터넷은 특정 부분의 말이 아니라 전문이 실린다는 점이 좋다는 것이다.

/고주희기자 orwell@hk.co.kr

■ 각 부처 표정

"이미 결정돼 있더라. 청와대 식으로, 그리고 브리핑룸으로." 10일 조영동(趙永東) 국정홍보처장은 정부 각 부처 기자실의 개편 방향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언론 환경의 '거스를 수 없는 대세'를 주시하며 국정홍보처를 비롯한 각 부처 공보관, 언론사 등 이해 당사자들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취재는 막히고 브리핑은 미흡한 청와대의 시행착오를 거듭하면 안된다'는데 대부분 뜻을 같이 했다.

각 부처는 기자실 개편과 취재권 보장 사이의 균형을 잡는 문제로 고심하는 흔적이 역력하다. 부처마다 업무 성격이나 대언론의 관계 필요 정도가 제 각각이기 때문이다.

국정홍보처의 한 관계자는 "고민이 4개"라고 했다. 등록제에 따른 기자실·공보관실 운영, 브리핑의 질과 취재권 보장, 통합 청사와 개별 청사를 사용하는 부처의 조화, 각 부처의 성격과 이해 관계 등을 모두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중앙청사에 총리실, 교육부, 통일부, 행자부 등 이질적인 부처의 기자실이 있다"고 말했다. 청와대와는 처지가 달라 '개방'과 '통합'의 구호로만은 어렵다는 뜻으로 읽혔다. 그래서인지 국정홍보처는 무작정 밀어붙이기식이 아니라 각 부처 공보관회의와 언론사 의견 청취를 거친 후에 안을 마련한다는 신중한 입장이다.

각 부처 공보관들은 또 조간신문의 가판 구독금지에 대해 "새벽 출근을 해야하지만 저녁에 낯 붉힐 일이 없어졌다", "기자들도 책임감을 갖고 기사를 쓰게 될 것"이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기자실 개편에 대해서는 아직 눈치만 보고 있다. 대부분 "지시 받거나 검토하는 것이 없다"고 했다. 조만간 인사이동이 있는 탓인지 '내 일'을 '내일'로 미루는 모습도 비춘다.

공보관들이 내심 우려하는 것은 의외로 '엠바고'(일정기간 보도 유예) 문제라고 한다. 한 경제부처 공보관은 "정책은 보도 시기가 중요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기자실을 개방해도 (조율이 쉽게) 출입기자들을 걸렀으면 좋겠다"는 말도 나온다. 그러나 국정홍보처측은 이에 대해 "공보관은 '기자 관리'에서 '홍보'로 역할이 변화되어야 한다"고 못박았다.

이에 비해 언론의 반응은 다소 수동적이다. 그렇지만 "취재 장벽이 강화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는 크다. 청와대처럼 사무실 출입 금지와 면담 신청제도가 도입될 것이라는 소문도 돈다. 한 신문 기자는 "기자실 개편은 결국 취재의 제한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다. 한 방송 기자는 "공무원의 정보공개에 대한 의식 변화가 수반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안준현기자 dejav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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