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납토성은 최대 폭이 60m에 이르는 대형 해자(垓子·성을 지키기 위해 둘레에 파놓은 못)가 설치된 대규모 토성이었음을 보여 주는 관련 유구와 유물이 대량 발굴됐다.서울시 송파구 풍납토성 서남쪽 성벽을 발굴해 온 국립문화재연구소(소장 김봉건)는 12일 발굴 현장에서 설명회를 겸한 문화재위원 지도위원회를 열고 성벽 아래부분과 해자에 깔았던 자갈다짐층과 함께 경질무문토기를 비롯한 출토 유물 10여 점을 공개했다. 이번 해자 유구와 유물 발굴로 풍납토성은 백제 초기 하남 위례성으로 왕성이었으며 백제의 왕권 확립 시기도 2세기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갈 가능성이 한층 커졌다.
이번에 확인된 자갈층은 성벽과 해자의 연관성을 밝히면서 해자의 규모를 짐작하게 하는 중요한 단서로 평가되고 있다. 문화재연구소는 "성벽의 남북 10m, 동서 40m를 절개해 조사한 결과 지표면 아래 7m 지점부터 지름 10㎝ 이상의 자갈이 24m 이상 깔려 있음을 확인했다"며 "이는 성벽 아래부분을 다지면서 물길을 이끄는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이런 자갈층은 1999년 동벽 발굴에서도 발견됐으나 당시에는 용도와 기능이 확인되지 않았다. 이번에 발견된 자갈층은 발굴지역이 올림픽대로에 막혀 더 이상 진행되지 못했지만 그 위에 덮인 개흙층 두께를 분석한 결과 수심이 3∼ 4m이고, 경사와 진행 방식을 보아 해자의 최대 폭은 60m에 이를 것으로 추정됐다.
또 성벽 중심부 하단의 개흙층과 점질토·사질토 교대 성토층 및 외벽 점토 다짐층에서 집중 출토된 유물은 모두 2세기 이전에 제작됐다는 점에서 성벽 축조 시점도 그때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발굴단은 "이번에 발견된 경질무문토기 4점과 회황색 연질 격자타날문 단경호 1점, 수백점의 토기편 등이 집중적으로 나왔다는 것은 성벽도 비슷한 시기에 축조된 것을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문화재위원으로 설명회에 참석한 최몽룡 서울대교수는"백제의 축성방식은 자갈과 나뭇잎, 진흙 등을 섞어 배수 기능과 함께 충격방지를 한 것이 특징"이라며 "출토유물 등으로 보아 왕권 확립 시기를 서기 100년 이전으로 올려 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또 이형구 선문대 교수와 고성(古城) 전문가인 심정보 한밭대 교수도 "풍납토성의 축조방식과 규모가 중국 전국시대의 판축 토성들과 유사해 축조 시점을 기원전으로까지 볼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번 발굴된 해자 유구는 서벽 지역 외에서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고 바닥 부분에 대한 정보가 불확실해 정밀조사가 필요한 것으로 드러났다. 정재훈 전통문화학교 교수는 "해자의 물길이 시작됐던 부분에 대한 연구와 함께 자갈돌이 박힌 아래의 지층에 대한 정밀조사가 지속적으로 이뤄져야 전체적 윤곽이 드러날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성벽중간에서 출토된 토기가 거의 완전한 형태로 나왔다는 점에서 발굴단은 안전한 축성을 바라며 의식적으로 매장했을 가능성을 제기했으나 관련 기록이 전혀 없어 축성 시기 추정을 둘러싼 논란의 불씨는 남았다.
/최진환기자 cho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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