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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 국경을 가다/삼엄한 초소… 일촉즉발 戰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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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 국경을 가다/삼엄한 초소… 일촉즉발 戰雲

입력
2003.03.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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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사 황유석 국제부 기자가 요르단에 특파돼 전쟁의 먹구름이 짙어가는 중동 지역 취재를 시작했습니다. 황 특파원은 이라크와 함께 요르단과 쿠웨이트, 사우디 아라비아 등에서 전쟁의 실상과 전황, 현지 사람들의 모습, 긴박하게 돌아가는 각국의 움직임을 생생하게 전합니다. /편집자주

12일 오전 10시 이라크와 맞닿은 요르단 동쪽 끝 국경 마을 알―카라마. 요르단 수도 암만에서 자동차로 4시간여를 달려 도착한 국경 마을은 황량하기만 했다.

국경초소를 넘어 조금만 더 가면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라는 생각 탓인지 전쟁의 냄새가 모래 바닥에서부터 음산하게 피어 오르는 듯 했다.

간간이 길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의 표정은 어두웠다. 미국과 영국군이 속속 증파돼 전투 개시 준비에 들어갔고 유엔의 동의 없이도 미국이 전쟁을 강행한다는 뉴스가 전해지면서 긴장이 한층 고조된 듯 했다. 아랍권에서 이라크로 입국한 자원자들이 자살공격 훈련을 받고 있다는 알 자지라 방송 보도도 화제였다.

암만에서 알―카라마로 가는 10번 도로에는 먼지를 잔뜩 뒤집어쓴 대형 유조트럭의 굉음이 요란했다. 이라크에서 암만으로 석유를 실어나르는 트럭들이다. 특이한 것은 이라크행 차선은 비교적 깨끗한 데 반대쪽 암만행 차선은 시커먼 기름띠 투성이라는 점이다. 이라크로 들어갈 때는 빈 트럭으로 갔다가 올 때는 잔뜩 기름을 싣고 오기 때문이라고 한다.

국경 지역은 이라크전 위기가 고조되면서 보안 검색이 한층 까다로워졌다. 현지 안내원 칼릴르 알―마사이드(35)에게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에 대해 물어보았다. "아랍 국가는 모두 독재 국가이고 인종과 종교가 복잡하기 때문에 미국식 민주주의는 불가능하다. 후세인마저 없으면 아랍은 미국에 아첨하는 지도자뿐이다."

이라크로 들어갈 수 있는 유일한 육상 통로인 국경 초소 앞에는 요르단 사람보다 허름한 행색의 이라크인이 더 많았다. 모두 석유나 물자를 실어나르는 트럭 운전사들이었다. 근처 가게 주인 모하메드 아즈라미(22)는 "두 달 전부터 매상이 절반 이하로 뚝 떨어져 한 달에 1,000요르단디나르(JD·약 1,430달러) 벌던 것이 지금은 500JD(714달러)밖에 벌지 못한다"고 푸념했다.

이라크인 트럭 운전사 하산 알리(42)는 "4, 5년 전부터 한 달에 800달러 받고 운전 일을 하고 있는데 전쟁 나면 후세인을 지키러 고향 바그다드로 돌아가겠다" 고 말했다.

요르단에서 바그다드로 통하는 유일한 육상 통로인 알―카라마 국경 초소 주변은 경계가 유독 삼엄했다. 운전을 하는 가이드는 전쟁이 얼마나 오래 갈지 몰라 국경 주변의 집값과 땅값이 절반 이하로 폭락했다고 설명했다.

요르단 정부는 두어 달 전 전쟁 위험이 심각하지 않았을 때만 해도 국경 초소를 자유롭게 운영해 이라크인들이 수시로 들락거렸다. 대부분 요르단 쪽에서 일자리를 구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전쟁을 피해 주변국으로 탈출하는 이라크 난민이 몰려들 것을 우려해 합법적으로 체류허가를 받은 사람을 제외하고는 모두 이라크로 돌려보내고 있다.

당장은 난민이 거의 없지만 국제적십자사와 유엔 난민고등판무관실(UNHCR) 등은 전쟁이 날 경우 20만∼60만 명의 난민이 요르단을 포함해 주변국으로 몰려들 것으로 보고 있다. 1991년 걸프전 때는 요르단에만 150여 만 명의 난민이 들어왔다.

알―카라마 일대의 보안이 강화된 것은 특히 주변에 주둔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미군 부대에 대한 테러 우려 및 기밀 유지 등을 위해서라고 한다.

가이드는 초소 근처에는 이라크 사람들이 많으니 말 걸지 말고 더더욱 사진은 안 된다고 신신당부했다.

보안요원의 눈을 피해 차 안에서 이라크인 트럭운전사들과 간단히 얘기를 마치고 카메라를 들이대는 순간 사단이 벌어졌다. 보안요원이 험악한 표정으로 차창을 두드리며 모두 나오라고 했다.

보안요원이 데려간 곳은 영어로 'BORDER DEPARTMENT'(국경부)라고 쓴 보안초소 건물이었다. 책임자로 보이는 사람이 "어디서 왔느냐, 왜 왔느냐, 누구냐" 며 서툰 영어로 묻다 다시 아랍어로 안내원에게 한참을 따져 물었다. 안내원이 갑자기 차 안에서 카메라를 갖고 들어왔다. 가슴이 철렁했다. 필름을 꺼내라고 했다. "디지털 카메라이기 때문에 필름이 없다. 현상하려면 컴퓨터가 있어야 한다"고 거짓말을 했다. 그는 이 방면에 문외한인 듯했다. 카메라를 한참 이리저리 들여다보더니 여권과 함께 돌려줬다.

나중에 들으니 안내원과 그 책임자는 이 지방 베두인(사막 유목민족) 출신이라는 인연이 먹혀서 그 정도에 그쳤지 운이 나빴으면 상당히 애를 먹을 뻔했다.

요르단은 중동의 약소국으로 이라크에 많이 의존해 살아오면서 여러 전쟁을 옆에서 보아온 탓에 웬만한 전쟁에는 그리 큰 위기감을 보이지 않는다. 암만과 국경지역에서 만난 요르단 사람들은 바그다드에서 시가전이 벌어지면 걸프전 때와는 다를 것이라며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을 응원하겠다고 했다. 속으로는 일단 전쟁이 터지면 금세 끝날 줄 알면서도 이라크가 끝까지 버텨주기를 바라는 것이 요르단인들의 복잡하면서도 솔직한 마음인 것 같다.

/알―카라마(이라크 접경 요르단)=황유석특파원 aquariu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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