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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보는 우리만화]<2> 신동우의 홍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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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보는 우리만화]<2> 신동우의 홍길동

입력
2003.03.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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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만화사에서 신동헌(76), 신동우(申東雨·1936∼1994) 형제를 빼 놓는다면 문학사에서 이광수와 이상을 빼는 것과 다름없다. 신씨 형제가 우리 초창기 만화계의 첫 손 꼽히는 '명문가'로 회자되는 이유 속에는 '홍길동'이 똬리를 틀고 있다.고 신동우씨는 한국전쟁 당시 피난지인 부산에서 중학생 신분으로 '땃돌이의 모험'을 발표한 신동 만화가였다. 서울 수복 후 서울대 응용미술학과를 졸업, 60년대 초부터 프로 만화가의 길을 걸었다.

그의 출세작은 66년부터 4년간 소년조선일보에 1,300여 회 연재한 '풍운아 홍길동'이었다. 이 만화는 당시 코흘리개들의 유일한 문화 공간인 만화방에서도 대박 인기를 터뜨렸다.

허균의 원작 소설 '홍길동'은 불우한 성장환경을 딛고, 무술을 연마해 슈퍼맨처럼 신출귀몰 악질 탐관오리를 응징하고, 누구나 평등하게 살 수 있는 이상향을 건설한다는 가슴 벅찬 판타지를 담고 있다. 소년 만화로는 더할 나위 없는 소재다.

만화 '풍운아 홍길동'이 동심을 사로잡은 이유는 간단했다. 선생의 타고난 천진난만함이 만화 속에 오롯이 녹아있었기 때문이었다.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뒹구는 홍길동, 그와 함께 등장하는 '호피' '차돌이' 그리고 맘씨 착한 소녀 '곱단이'등의 나오는 인물이 절묘했다. 캐릭터마다 티없이 맑게 웃는 얼굴이어서 심지어 악당까지도 유머러스하기 그지없다. 가난에 찌든 60년대 어린이들의 미간을 한 순간에 활짝 펴준 명작이었다.

그는 1980년부터 풍속화에 전념했다. 85년 3월3일자 한국일보 6면에는 한국일보사와 갤럽이 공동조사한 '우리 국민의 문화의식' 설문결과가 발표됐는데 '가장 좋아하는 화가가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기라성 같은 정통 화단의 화백들을 물리치고 신동우씨가 3위를 차지했다. 1위는 김기창, 2위는 피카소였다.

그의 만화 감각은 '타고났다'는 게 중론이다. 당대 최고의 속필 솜씨가 그랬다. 스케치북을 잡았다 하면 순식간에 쓱싹쓱싹 한 컷의 만화로 그려내곤 했다.

그의 품성은 동심과 닮았다. 50을 넘기고도 눈가 웃음이 떠나지 않는 동안이었고 항상 '허허허' 웃음을 터뜨렸다. 그런가 하면 화장실에서 조간신문 부고(訃告)란에 난 지인의 이름을 보고 엉엉 대성통곡을 하기도 했다.

그에 대한 기억은 나에게도 새롭다. 58세의 한창 나이에 암으로 세상을 떠나기 얼마 전, 홍익대 부근에 있던 화실을 불쑥 방문했던 적이 있다. 불청객을 껄껄 웃으며 맞은 그는 헤어질 때 "그냥 보내기 섭섭하다"며 책상서랍 속의 30㎝ 플라스틱 자(尺)며 연필 등을 주섬주섬 챙겨서 "안 가져 가면 내가 섭섭해서 안 돼"라며 손에 쥐어 주었다. '풍운아 홍길동'에 등장한 차돌이는 그의 또 다른 '페르소나'(persona)였다.

/손상익·한국만화문화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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