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덕홍 교육부총리는 난항을 거듭했던 인선 진통의 의미를 교육개혁에 담아내야 한다. 이게 국민들이 바라는 기대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먼저 교육정책의 기조를 바르게 설정해야 한다.우리 사회는 교육정책의 이념을 놓고 형평을 강조하는 평등주의와 경쟁력 강화를 주장하는 신자유주의적 시장 논리가 맞서고 있다. 두 입장에 각각 장· 단점이 있어 어느 쪽이 옳고 그르다고 흑백 논리로 판단하는 것은 오류를 범하기 쉽다. 가장 합리적이고 현실적 대안은 상반되는 두 노선을 적절히 조화시키는 데서 균형을 찾는 것이다.
말할 것도 없이 교육개혁은 국가수준의 개혁 요구와 개인수준의 요구, 그리고 집단수준의 요구를 동시에 충족시키는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이 세 차원의 요구가 한 목소리로 강조하는 공통의 개혁과제가 바로 공교육 살리기다. 어떻게 해서든 명문대에 들어가려는 입시전쟁이 고액과외를 부추기고 그 여파로 공교육이 황폐해진 것이 우리 교육의 서글픈 단면임을 부정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사설 학원이 공교육을 대체하는 역기능 현상이 갈수록 심화하고 특정 지역에서는 위장 전입이 극성을 부려 집값까지 폭등한 것은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이런 병리 현상을 근본적으로 치유하려면 공교육을 살려 학교 교육만 착실히 받아도 원하는 대학에 들어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세계화 시대와 지식혁명 시대를 맞아 교육 경쟁력을 높이는 일은 초등, 중등, 고등, 전문 교육에 구별이 있을 수 없게 됐다. 그러나 이를 이유로 교육기회의 형평원칙을 깨뜨려서는 안되고 교육정의를 무너뜨려서도 안 된다. 평준화 원칙은 변함없이 지켜져야 하며 다만 그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한 보완조치가 지속적으로 강구되어야 한다.
부끄럽게도 우리나라에는 국내수준의 일류 대학은 있어도 세계수준의 유명대학은 없다. 이 점을 인식해 대학의 경쟁력을 집중적으로 강화할 것을 권고하고 싶다. 대학 교육의 질적 향상을 유도하기 위해 평가제를 실시해야 하지만 대학자율과 교권을 침해하는 일은 피해야 하고, 재정난 극복을 위해 물적지원은 늘리되 그것을 명분으로 감사권을 남용하는 일은 피해야 한다.
교육개혁의 또다른 핵심과제는 교육행정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일이다. 통제와 간섭 위주의 행정패턴을 지원과 봉사 위주로 바꿔야 한다. 역대 정권이 교육개혁에 실패한 주요 이유가 교육행정의 관료적 타성을 혁파하는 데 실패했기 때문임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교육개혁이 부진했던 또 다른 이유는 교육부가 교육주체들의 이해에 과민 반응한 것과 깊은 관련이 있다. 이 점을 반면교사로 삼아 윤 부총리는 목소리가 큰 특정집단에 휘둘리는 일이 없어야 하고, 시대착오적인 수구집단의 주장에 좌고우면해서도 안 될 것이다. 교육부총리는 원칙을 갖고 개혁을 추진하되 독선의 유혹에 빠지지 말아야 하고, 교육주체들의 목소리를 폭넓게 듣되 중심을 잃지 않는 흔들림 없는 자세를 견지해야 할 것이다.
필자는 한 때 초등학교에서 교편을 잡은 일이 있다. 그때만 해도 교실은 오손도손했고 교무실은 화기애애했다. 교권이 살아 있었고 교육공동체는 하나로 연대했다. 그러나 지금 교실은 왕따와 폭력으로 삭막해졌고 교무실은 편가르기의 대결장이 되었으며 군사부일체로 추앙받던 스승의 권위는 바닥으로 추락한 게 사실이다. 뿐만 아니라 이번 인선진통이 말해주듯 교육공동체는 보·혁 구도로 분열되어 서로 각축하는 양상이다. 교육부총리는 이 점을 깊이 통찰해 우리의 스승상을 바로 세우고 교육공동체를 통합하는 일에도 정성을 쏟아 줄 것을 기대한다.
성급하게 가시적인 성과에 집착할 것이 아니라 시간이 걸리더라도 교육의 난맥을 바로 잡아 더 이상 교육이 실험대상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김 호 진 고려대 정경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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