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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문화코드]<4> 코믹 섹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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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문화코드]<4> 코믹 섹스

입력
2003.03.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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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조폭, 오늘은 섹스 코미디. 연간 관객 1억 명 시대에 진입한 한국 영화계의 중간 진단이다. 조폭 코미디 번성 이후 '아 유 레디?'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 등 50억 원에서 심지어 100억 원까지 쏟아 부은 블록버스터들이 잇단 흥행 참패를 맛본 후 한국 영화계의 활로를 뚫은 것은 조폭 로맨틱 코미디 '가문의 영광'과 섹스 코미디 두 편이었다.

지난해 11월 개봉한 '몽정기'가 250만 명, 12월 개봉한 '색즉시공'이 400만 명의 관객을 각각 동원해 수렁에 빠진 한국 영화를 구했다. 섹스 코미디가 숨통을 틔우자 다채로운 섹스 영화가 튀어 나와 편식증에 걸린 한국 영화에 풍성한 식단을 제공했다. 다양한 세대, 다양한 부류의 성 이야기가 세상 밖으로 걸어 나왔다.

10대('몽정기'), 20대 초반('색즉시공'), 30대 ('밀애'), 노년('죽어도 좋아') 등 세대별로 다른 경향이 드러났고 동성애('로드 무비') 등 은폐돼 온 언저리의 성까지 장편 극영화에 담겨 관객과 만났다. 새로운 돌파구를 찾으려는 제작자 및 기획자의 요구와 자극적이고 오락성 높은 영화를 찾는 관객의 심리가 부합했다. 올 상반기에도 섹스 코미디 영화가 줄을 잇고 있다. 14일 개봉하는 '대한민국 헌법 제 1조'(감독 송경식)에 이어 '맛 있는 섹스 그리고 사랑'(봉만대 감독), '바람난 가족'(임상수 감독) 등이 섹스에 코미디와 사회적 메시지 등을 실어 한층 다양해진 섹스 영화의 스펙트럼을 펼쳐 보인다.

성 담론의 확산 대담해진 표현

섹스코미디가 대중문화 콘텐츠의 중심어로 부상한 것은 개방이라는 시대 흐름, 모바일 인터넷 만화 비디오 뮤직비디오 등 미디어의 확산과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섹스를 소재로 한 영화는 1970·80년대의 '별들의 고향'류의 호스티스물, '애마부인' 류의 불륜물을 넘어 이제는 생활 여기저기서 만날 수 있는 일상적 섹스에 이르고 있다. '색즉시공' 등 섹스 코미디는 여기에 엽기와 화장실 유머 등 은밀한 일상까지 곁들였다.

소재 확산과 더불어 표현 수위도 높아졌다. '몽정기'는 참외, 홍합, 사발면 등의 소재를 중학생들의 일상과 엽기적으로 엮어 내 인기를 끌었다. '색즉시공'은 남자 대학생들의 섹스 관심을 화장실 유머와 결합시켜 돌풍을 일으켰다. 자위 행위를 하다가 여학생에게 들키기, 정액 프라이 만들어 먹기, 돼지 발정제 먹기, 마네킹으로 자위 하기 등 노골적이고 대담한 장면에 웃음이라는 얇은 속옷을 입혀 상업적 폭발력을 얻었다.

대담한 표현이 관객을 끄는 이유는 사회적 환경의 결과물이기도 하다. 휴대폰으로도 성인물을 볼 수 있을 정도로 '손에 잡히는 섹스'의 시대가 활짝 열렸다. 휴대폰의 성인방송 서비스는 기본이고 H양 O양 등의 비디오 시리즈, 성현아 등 인기 연예인의 누드가 삽시간에 '구워져' 휴대폰과 인터넷을 통해 전파된다. 네티즌이 자신의 누드를 핸드폰 카메라와 웹캠으로 인터넷에 올리는 등 수요자와 공급자의 구분조차 모호해진 채 섹스 콘텐츠는 마구 허공을 날아 다니고 있다.

장르 정착 기대

섹스 코미디 영화의 부상에는 충무로의 '제작비 거품 빼기' 풍조도 한 몫을 했다. '몽정기'와 '색즉시공'의 순제작비는 각각 17억 원과 22억 원. 비교적 적은 예산으로 대박을 터뜨렸다. 지난해 영화 한 편의 평균 제작비는 33억 원이었다. '맛있는 섹스…'의 제작자인 유인택 기획시대 대표는 "지금은 관객이 100만 명 들어도 손해를 보는 고비용 구조다. 색깔있게만 만들면 섹스 소재 영화는 돈을 적게 들이고도 수익을 올릴 수 있다"고 말했다.

섹스 코미디의 성공은 장르화 정착으로 이어질 수 있으리란 기대까지 낳고 있다. 이준익 씨네월드 대표는 "장르화까지 발돋움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다양한 장르화는 영화 산업의 안정적 토대를 마련해 준다는 것이다.

그러나 섹스 코미디 또는 섹스 영화가 전면 부상하거나 다양한 섹스 영화가 번성하는 데까지 나아갔다고는 보지 않는 시각도 있다. 영화평론가 김정룡씨는 일시적인 소재주의적 흐름으로 짚었다. 그는 "페미니즘의 외투를 입거나('밀애'), 학창시절의 향수를 건드리는 변형('몽정기')이지 성적 주제를 통해서 인간 욕구를 바라보는 깊이는 부족하다"며 "폭력 일변도의 시장이 일시적으로 방향을 튼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억압과 검열을 통해 언저리로 밀려나 있던 섹스가 이제 제자리로 귀환하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영화평론가 김소희씨는 "정치적 윤리적 검열 속에서 억압된 두 코드 가운데 폭력이 먼저 돌아왔고 그 다음으로 섹스가 돌아왔다"고 말했다. 과거의 섹스 영화와 다른 점은 기혼자의 성이란 안전한 제도적 성에서 제도 바깥의 '침묵 당한 성'이 돌아오고 있다는 것. 그는 "섹스 코드에 편승한 영화는 흥행을 위해 당분간 코미디 장르의 겉모습을 띠고 나타난 뒤 장르로 정착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원조교제('버스, 정류장'), 근친상간('중독'), 기혼여성의 일탈('밀애'), 동성애('로드무비' '철없는 아내와 파란만장한 남편 그리고 태권소녀') 등 언저리 섹스가 일부일처제 중심의 제도권 섹스와 어깨를 나란히 하면서 섹스는 대중문화의 꽃인 영화산업의 중심 자리로 들어오고 있다.

/이종도기자 ecri@hk.co.kr

■성인물 유통경로 세대교체 "비디오에서 인터넷으로"

"요즘 누가 비디오 가게에서 성인 비디오를 빌리나요. 보고 싶으면 인터넷에서 다 구할 수 있는데…." 서울 강남의 Y고 1학년 장모(16) 군은 요즘 학교에서는 친구들끼리 메신저를 통해 성인물 동영상을 주고 받는다는 말도 덧붙였다.

비디오 대여점을 20여 년 꾸려왔다는 근처 D 비디오 대여점 주인 박모(53)씨는 "몇 년 전만 해도 나이를 속이고 성인물을 빌리거나 몰래 구해 달라는 학생들이 있었지만 요즘은 없다"며 "한창 때보다 비디오 대여가 절반 가까이 줄어 들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성인물 비디오를 제작하는 속칭 '에로 비디오' 업계에도 불황의 그늘이 짙다. 업계에 따르면 1990년대 초반만 해도 1만 장 이상 팔린 대박이 있었지만 최근에는 잘 해야 3,000 장 정도이고 보통은 500여 장 수준이다. 1996년 5,000여만 원을 들여 1만5,000여 장을 판 '젖소부인 바람났네' 나 1999년 '미소녀 자유학원' 시리즈 등의 성공담은 전설이 된 지 오래다. 매월 신작을 발매하는 프로덕션은 시네프로, 클릭 정도에 불과하다.

그래도 연간 제작되는 섹스 비디오는 지금도 전성기의 80%인 200 편을 넘는다. 보급 수단이 테이프에서 인터넷으로 바뀌었을 뿐 최종적 소비는 여전하다는 얘기다. 인터넷의 다음 까페에서 '에로'라는 검색어는 금지돼 있지만 검색 빈도는 아직 매우 높다는 게 관계자의 귀띔이다.

인터넷을 통한 섹스 비디오 확산은 O·P양 비디오 소동으로 입증됐다. 1999년의 'O양 비디오'는 퍼지는 데 한 달 이상 걸렸고 CD로도 많이 돌아 다녔지만 이듬해의 'P양 비디오'는 며칠 만에 급속도로 퍼졌다. 성인 남성의 절반이 보았다는 이 비디오는 초고속 인터넷망 보급에 크게 공헌했다는 얘기까지 나왔다. 비슷한 때인 1999년 6월에는 첫 인터넷 성인방송이 등장했다. 98년에 외국 포르노의 독무대가 될 것이라며 성인물 전용극장 설립에 반대했던 업계는 이제 훨씬 더 노골적이고 강력한 인터넷 섹스물의 치명적 도전을 받고 있다.

1990년대 초반까지 에로 시장의 지존이던 유호프로덕션은 사업 다각화를 꾀해야 할 처지가 됐다. 작년 자회사인 핑크에서 '페티쉬'라는 이름의 비디오를 선보여 눈길을 끌었다. 섹스 묘사의 강도보다는 페티시즘, 사이버 섹스, 셀프 카메라, 특수의상 등 시대의 요구에 맞는 다양한 소재 개발이 중요하다고 생각한 때문이다. 이는 섹스에 코미디를 가미한 '누들누드'나 영화 '터미네이터'를 패러디해 선풍적 인기를 누린 '터보레이터' 시리즈의 성공에서 증명됐다.

5,000원에 에로물 3편을 보여주는 청량리 역 근처의 한 낡은 성인극장의 영사기사 한모(45)씨는 "여긴 곧 문을 닫겠지만 어딘가에서 누군가 에로물로 돈을 벌 것"이라고 말했다. 시대에 따라 매체가 변할 뿐 섹스 콘텐츠 자체는 언제든 새로운 생명력으로 되살아 나고 있다.

/홍석우기자 museh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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