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타 로벨 글, 그림·장은수 옮김 비룡소 발행·5세 이상·8,000원
어린이 만화영화가 끝난 오후 5시. 모처럼 평일에 쉬는 기회여서 6살 난 딸 아이와 TV 만화를 보다가 이른 저녁 뉴스까지 함께 보게 됐다. 임박한 이라크 전쟁이 톱 뉴스다. "미국과 영국은 프랑스와 러시아, 독일 등 다른 나라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17일까지 이라크가 최종 무장해제토록 하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수정 결의안을 제출했습니다."
아이가 묻는다. "이라크를 어쩐다는 거야. 전쟁이 나는 거야. 왜 미국은 전쟁 하려는 거야." 복잡한 사정을 간단한 설명으로 이해하기에 아이는 너무 어리다.
그래서 이런 말이라도 해주자고 주제를 약간 돌려 "전쟁은 나쁜 거야. 사람이 죽고, 재산을 잃거든"하고 말해 놓고 나니 내가 생각해도 싱겁다.
가만히 둘러보면 반전(反戰)을 직접 다룬 어린이 책이 매우 드물다는 사실에 놀랄 것이다. 최근 1년 안에 나온 책을 기준으로 따지면 한국전쟁을 다룬 소설가 윤정모씨의 첫 동화 '전쟁과 소년'(푸른나무 발행), 일제시대 이야기인 권정생씨의 '슬픈 나막신'(우리교육 발행), '논리야 놀자'의 작가 위기철씨가 쓴 '무기 팔지 마세요'(청년사 발행) 정도가 고작이다. 그것도 모두 초등학생 이상 아이들이 볼 동화이다.
그림책으로는 독일 그림형제의 이야기를 새롭게 쓰고 직접 그림까지 그린 폴란드 아동문학가 야노쉬의 '용감한 꼬마 재봉사'(보림 발행)가 1996년에 번역돼 나온 정도이다.
그래서 역시 폴란드 출신 여성 작가 아니타 로벨이 글을 쓰고 그림까지 그린 '어머니의 감자밭'은 반전 동화·그림책 부문의 빈 자리를 메워 줄 만한 책이다.
싸움이 멈추지 않는 동쪽 나라와 서쪽 나라 사이에 작은 계곡이 있다.
그곳에는 아주머니와 두 아들이 묵묵히 감자밭을 가꾸며 함께 산다. 그러던 어느 날 아들 둘은 제복과 훈장에 매료되어 각각 동쪽과 서쪽 나라의 군인이 되려고 집을 나간다.
하지만 전쟁보다 배고픔에 괴로웠던 군인들은 형제의 고향집으로 몰려들고, 이곳에서 또 감자를 차지하기 위한 전쟁을 벌인다.
감자밭은 폐허가 되고, 무너진 집 사이로 어머니는 힘없이 누워 있다. 이를 본 형제는 욕심이 앞서 전쟁을 했던 자신을 탓하며 울부짖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를 본 군인들도 고향에 계신 부모님을 생각하며 싸움을 멈춘다.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난 작가는 제2차 세계대전 중 대학살에서 가까스로 살아 남아 미국으로 건너가 일러스트레이터 겸 그림책 작가로 활동했다. 비룡소에서 먼저 나온 로벨의 다른 그림책 '안나의 빨간 외투'에도 전쟁이 배경으로 자리잡고 있다. 전화를 몸으로 겪은 작가는 소박한 터치의 그림과 함께 전쟁의 부당함을 폐부를 찌르듯 강하게 전하고 있다. 67년 작품인데 뒤늦게 번역된 것이 아쉬울 정도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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