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한국시론]대통령의 "TV활용" 줄여야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한국시론]대통령의 "TV활용" 줄여야

입력
2003.03.12 00:00
0 0

어쩌면 한 편의 드라마보다도 긴장감 넘치는 100분이었다.역사상 유례가 없는 대통령과 평검사들간의 TV 생중계 토론은 여러 가지 복잡한 생각과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아마 이를 시청한 국민들도 대개 비슷하게 느꼈을 것으로 생각된다.

토론에 대한 반응도 엇갈리는 것 같다. 검사들이 오만했다는 평가도 있고, 노무현 대통령이 너무 위압적이었다는 시각도 있는 것 같다. 반면 토론을 노 대통령의 개혁 실천을 위한 정면돌파식 현안 타개 방법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이번 토론이 민주주의 실천에 중요한 출발점이 될 것으로 기대하기도 한다. 이러한 엇갈린 반응이나 평가를 떠나서 언론학자로서 필자는 대통령이 국정현안의 해결을 위해 방송매체를 이용하는 것이 합당한가 하는 점을 짚어보고자 한다.

이날 토론의 인상은 '토론의 달인(비록 대통령은 부정했지만)'과 아마추어와의 대결이었을 뿐만 아니라, 노 대통령은 방송매체의 지원사격을 받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이는 대통령이 방송 매체의 본질적 특성과 극적인 효과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는 사실에 근거한다. 실제로 최근 노 대통령은 지난 대선에서 방송매체의 도움을 받았음을 밝힌 바 있다. 다시 말하면 노 대통령은 '규제 대상'으로서가 아니라 '매체 성격'의 측면에서 방송을 완전히 파악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방송의 전문가'가 생중계되는 토론을 통해서 현안을 헤쳐나가고자 한다면 국민들의 공감대 형성에 큰 효과를 거둘 수 있음은 자명한 일이다.

실제로 노 대통령의 이미지는 방송매체의 본질적 성향에 잘 부합된다. 작년에 타개한 프랑스의 유명 사회학자 부르디외는 텔레비전이 '무엇인가로 화면을 채워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처해 있다고 지적하였다. 그는 방송 프로그램이 '시간'이라는 한정된 구조 속에서 정치 경제 사회적 법칙들에 의해서 결정되는 가운데 시청자들에게 무엇인가 차분히 생각할 수 있는 여유를 주기보다는 빠른 속도로 판단을 하도록 하는 매체적 속성을 지닌다고 지적했다. 게다가 대통령은 언론이 추구하는 가장 중요한 공식 정보원이다. 대통령에 관한 사항은 가장 중요한 뉴스다. 이러한 매체적 속성과 대통령의 방송에 대한 이해가 결합되어 대통령이 출연하는 프로그램은 인기 드라마와 같은 영향력을 발휘한다.

노 대통령은 텔레비전 방송의 화면이 무엇으로 채워져야 하는지를 알고 있는 듯하다. 시청자들이 무엇을 보고 싶어한다는 것을 파악하고 있으며, 화면에서 자신이 어떻게 그려지는지를 잘 알고 있는 것 같다. 결국 화면을 무엇인가로 채워야 하는 강박관념을 가진 방송은 대통령의 의중이 무엇인지를 효과적으로 말없이 웅변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자칫 방송매체가 권력을 정당화하는데 동원된다는 인식을 낳을 수도 있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이번 토론을 지켜본 소감은 시청자들이 무엇을 보고자 하는가 하는 욕구의 문제와는 상관없이, 방송매체가 반드시 이와 같은 토론의 매개자가 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논의가 꼭 필요하다는 점이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공적 기관으로서의 방송매체의 존재이유에 대해 재고해 보아야 할 것이다. 비록 방송매체의 존립 체제가 정치적 체제에서 벗어날 수 없을지 모르지만, 그럼에도 방송은 정치적 중립을 지키고 나아가 권력과 약간의 긴장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제기된 방송의 정치적 독립과도 직결되는 것이다.

따라서 비록 노 대통령의 의도가 순수하다는 점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방송을 장악하려고 한다는 의심이 계속 생겨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인지 모른다. 개혁은 힘차게 추진하되 대통령의 언론매체에 대한 개인적 활용은 줄여 나가는 것이 개혁에 대한 불신을 불식시키는 첫 번째 수순이 될 것이다.

이 재 진 한양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