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원씨의 소설 '은비령'. 중년 연인의 이야기를 통해 인연의 신비를 다룬 중편소설이다. 이순원씨는 강릉에서 태어나고 자란 작가이다. 강원도 토박이인 그는 은비령이라는 곳을 정말 알았을까. 한 인터뷰에서 그는 "이야기만 듣다가 소설을 쓴 후 찾아가 봤다"고 했다.은비령은 강원 산골 중에서도 가장 은밀한 곳에 들어있는 고개이다. 한계령 9부 능선에서 인제군 현리로 빠지는 지방도로가 있다. 점봉산과 가리산이라는 덩치가 장한 두 봉우리를 가르는 골짜기를 따라 나 있다. 이 곳이 은비령이다. 눈이 많이 와서 은비령(銀飛領)이라고도 하고 워낙 깊이 숨어있어서 은비령(隱秘領)이라고도 한다.
이 언덕과 계곡의 진짜이름은 필례계곡이다. 계곡의 모습이 베를 짜고 있는 여인(匹女)의 모습을 닮았다고 해서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대동여지도에는 '필노령'이라고 기록돼 있다. 노력을 아끼는 고갯길, 즉 지름길이라는 뜻이다. 지름길일수록 험한 법. 필례계곡길은 정말 촌각을 다투는 급한 일이 아니면 대부분 피해갈 만큼 험난한 길이었다.
험한 계곡길이 세상에 알려진 이유는 계곡이 품고 있는 신비한 물 때문이다. 계곡 이름 그대로 필례약수이다. 발견된 지 30년 정도인 신생(?) 약수이다. 오지여행가들만 알고 다녔지만 대로가 나면서 제법 유명해졌다. 약수터 인근에 규모가 큰 숙박시설과 분위기 있는 카페, 식당 등이 들어섰다.
필례약수는 다른 약수와 조금 다르다. 철분은 물론 구리 성분도 많이 녹아있다. 게다가 탄산수이다. 약수에 어느 정도 익숙한 사람이라도 약간의 심호흡을 한 뒤 마셔야 한다. 톡 쏘면서도 비리다. 서울 사람들은 대부분 한 바가지를 다 못 마신다. 마시다 말고 뿜어내기도 한다. 그러나 숙취를 가시게 하고 특히 위장병과 피부병에 좋다고 해 멀리서 물통을 싣고 찾아온다.
오랫동안 오지였던 탓에 주변이 잘 보존되어 있다. 식당가와 주차장을 제외하고는 울창한 숲이 약수터를 두르고 있다. 약수 한 그릇 마시고 걸으면 그냥 보약이 된다. 또 은비령 고갯길은 드라이브 코스로도 제격이다. 특히 요즘처럼 눈이 많이 쌓였을 때에는 거의 환상적이다. 물론 월동장구를 갖춰도 운전하기가 만만치 않다.
/권오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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