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침공에 터키를 또다시 끌어들이려는 미국의 노력이 터키 여론의 반발에 직면했다. 이에 따라 이라크 침공 작전에서 북부에 제2전선을 형성하려는 미국의 계획은 차질을 빚게 됐다.미국은 터키를 끌어들이는 데 성공한다 하더라도 장기적 측면에서는 문제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이라크 내부에 완충지대를 만들기 위해서는 미군의 진격에 뒤따라 터키군이 진입하도록 허용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지난달 말 열린 이라크의 쿠르드족 반정부 조직 회의 참석자들은 미국의 대의는 지지했지만 터키군이 이라크에 진입하는 것은 딱 잘라 거부했다. 관계 당사자들의 합의가 없다면 미군의 침공으로 해방된 이라크 북부는 또다시 혼돈에 빠질 것이다.
터키의 희망은 1991년의 사건이 재발되지 않도록 막는 것이다. 당시 사막의 폭풍작전이 전개됐을 때 쿠르드족 50만 명이 국경을 넘어 터키로 들어왔다. 이번에 터키는 쿠르드족의 월경을 막기 위해 미국과의 협상이 실패하더라도 이라크 북부에 군대를 진입시키려 할 것이다. 군대 진주를 통해 터키는 새로운 이라크 건설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터키의 영향력 행사 자체는 이라크의 포스트 후세인 체제가 터키와 우호적인 관계를 필요로 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나쁜 일이 아니다. 터키는 오랫동안 서방과 긴밀히 연합한 전통을 갖고 있으며 유럽과 미국의 중요한 교역 대상국이다. 하지만 쿠르드족 문제에서는 사정이 다르다.
터키 이라크 이란을 분리하는 산악 국경지대에 사는 쿠르드족 2,500만 명은 문화적, 언어적으로뿐 아니라 민족성에 대한 주장도 각양각색이다. 오스만 투르크 제국 치하에서 쿠르드족은 모든 이슬람 주민들에게 주어진 특권적 지위를 누렸다. 그러나 19세기 말 오스만 투르크 제국의 분열에 맞춰 다양한 쿠르드족 민족집단이 정체성과 독립을 주장하자 터키는 정치적 쇠퇴에 직면하게 됐다.
터키가 오스만 투르크 제국 멸망 후 서구모델에 기초해 국가를 형성할 수 있었던 것은 독자적인 새로운 민족성을 강조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산악 터키인'으로 불리며 멸시됐던 쿠르드족은 2등 시민으로 격하돼 자신의 언어와 문화를 사용하고 표현할 권리를 박탈 당했다.
80년에 걸친 터키의 억압은 폭력의 악순환과 불신의 유산을 키웠다. 그럼에도 중동지역 쿠르드족은 정치적 목적과 수단에서 합의하지 못하고 있다. 1980년대 이라크의 화학무기 공격을 받았던 이라크 쿠르드족은 현재 다국적군의 비행금지구역 설치 덕분에 어느 정도 자치를 누리고 있다. 이들은 사실상의 자치정부를 구성했으며 얼마간의 평화와 경제적 번영도 성취했다. 그럼에도 독립을 원치 않는다.
지난달 말 회의에서 쿠르드족 지도부는 포스트 후세인 체제에서 이라크 전체를 포괄하는 다민족 정부에 참가한다는 데 동의했다. 미국의 계획에 대한 쿠르드족의 동의는 미국의 전후 목적을 달성하는 데 있어 터키의 역할 조정이 얼마나 결정적인 것인지를 보여준다.
만약 터키가 이라크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한다면 쿠르드족을 더욱 소외시킬 뿐 아니라 심지어 미군의 전선 배후에서 무장봉기를 일으키게 할 수도 있다. 이란도 터키군이 자신의 세력권에 지나치게 접근할 경우 개입 유혹을 받을 수 있다. 이런 점에서 터키는 이라크에 대해 온건한 역할을 맡는 것이 국익에 이로울 것이다.
제이선 굿윈 영국 국제문제 전문가
/NYT 신디케이트=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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