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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미국과 유럽의 충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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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미국과 유럽의 충돌

입력
2003.03.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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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 전쟁을 둘러싸고 서구의 분열이 심각하다. 미국과 영국은 이라크의 무장해제를 강제하기 위한 안보리 결의안을 통과시키려 하지만, 프랑스는 반대를 공언했다. 더구나 시라크 대통령은 유엔으로 달려가서라도 안보리 결의안 반대 운동을 벌일 뜻을 밝혔고, 아프리카의 프랑스어권 비상임이사국을 상대로 로비까지 하고 있다. 이쯤 되면 감정의 골은 깊어졌다. 또 러시아의 이바노프 외무장관마저 거부권 행사를 공언해 프랑스를 거들고 나섰다. 유엔결의안을 등에 업고 후세인 축출 전쟁을 하려던 미국의 부시 대통령은 외교적으로 위기에 몰렸다.■ 프랑스의 독자적 목소리는 1960년대 드골 대통령시절부터 높았지만, 미소냉전이라는 거대한 구도 아래서 국제정치에 그리 큰 파장을 주지 못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전혀 다른 양상이 전개되고 있다. 프랑스의 뒤에는 독일의 동조가 있다. 전후 승전국 행세를 해온 프랑스와는 달리 독일은 패전 국가로 지난 58년 동안 미국이 그리는 세계전략에 순응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라크 전쟁을 놓고 독일이 처음으로 미국에 반기를 들고 나왔다. 유럽연합의 두 기둥이 연합하여 미국에 대들게 되었다.

■ 왜 같은 문명의 뿌리를 가진 미국과 유럽은 이렇게 충돌하게 되었을까. 미국의 지성은 부시가 강요하는 2분법적 세계관과 일방주의 외교에 그 원인이 있다고 본다. 그러나 미국의 로버트 케이건은 그의 저서 '천국과 권력'에서 헌팅턴의 '문명의 충돌'에 필적하는 색다른 견해를 제시했다고 한다. 유럽은 토머스 홉스의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을 거쳐 무력외교를 과거의 유산으로 청산함으로써 칸트가 주장한 영구평화론에 근접했다. 반면 미국은 자유주의를 지키기 위해 군사력의 보유와 사용이 필요하다는 논리를 신봉함으로써 아직 홉스 사상의 언저리에 머물러 있다고 할 수 있다.

■ 케이건의 견해에 따르면 분명 유럽은 미국보다 발전된 단계의 세계관을 실현하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유럽연합이라는 경제공동체를 형성하고 정치적 통합을 모색하고 있다. 그러나 유럽도 하나는 아니다. 독일, 프랑스, 러시아 등 대륙 중심국가는 반미전선을 견고히 하고 있지만, 영국과 스페인 등 해양중심 국가들은 미국 편을 들어 또한 내부분열이 심각하다. 이라크 전쟁은 후세인 뿐 아니라 부시와 블레어도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다. 큰 변화가 임박하고 있다.

/김수종 논설위원 sj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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