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영국은 10일 이라크 2차 결의안에서 당초 무장해제 시한으로 제시했던 17일을 연기할 수 있음을 시사하며 한발짝 물러섰다. 이는 프랑스와 러시아가 이날 공개적으로 결의안에 대한 거부권 행사를 천명한데다 결의안 통과에 필요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회원국 9개국의 찬성 획득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결과로 풀이된다. 미국과 영국은 이날 당초 11일이나 12일께로 거론됐던 2차 수정 결의안 투표를 일러도 13일 이후로 잠정 연기했다.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는 10일 반전 여성단체와의 TV토론에서 '17일 최후통첩'을 결행할 것이냐는 질문을 받고 "우리는 현재 이 문제에 대해 다른 나라들과 다시 논의하고 있다"고 답했다. 애리 플라이셔 백악관 대변인도 이날 '17일 최후통첩' 결의안 문구를 수정할 가능성이 있음을 밝히면서 "몇 가지 아이디어가 검토되고 있어 표결에 부칠 최종 문안에 어떤 내용이 담길지를 말하기는 아직 이르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제레미 그린스톡 유엔 주재 영국 대사는 비공개 회의에서 개전 결정 시기를 17일에서 3월 말로 연기할 용의가 있음을 밝혔다고 외교관들이 전했다. 그린스톡은 이날 구체적으로 이라크의 무장해제 의지를 확인하는 기간으로 10일을 제시하고 이어 구체적인 해제 증거를 확인하는 기간을 두자는 2단계 해법을 대안으로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앙골라 멕시코 칠레 등 6개 안보리 비상임 이사국은 이날 이라크 무장해제 시한을 4월 17일로 연기하자는 별도의 새 결의안 초안을 안보리에 제출했다. 미국의 지원과 국내 반전여론 사이에서 그동안 입장 표명을 꺼렸던 파키스탄은 11일 "2차 결의안 투표에 기권키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은 이날 "미국 영국 스페인이 제출한 새 결의안에 노(no)라고 투표할 것"이라며 처음으로 거부권 행사 방침을 명시적으로 밝혔다. 5개 상임 이사국의 반대표는 곧 거부권 행사로 결의안 부결을 의미한다. 시라크 대통령은 "그러나 굳이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아도 결의안은 9표를 얻지 못해 부결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러시아는 이날 이고리 이바노프 외무장관이 "거부권 행사 방침을 밝힌 데 이어 유리 페도토프 외무차관이 "17일 무장해제 시한이 늦춰져도 전쟁 결의안은 거부할 것"이라고 한층 강력한 방침을 밝혔다. 그동안 반대 원칙만 표명했던 러시아가 거부권 행사를 직접 밝힌 것도 처음이다.
플라이셔 백악관 대변인은 프랑스와 러시아의 거부권 행사 방침에 대해 "사실이 아니기를 바란다"며 "거부권을 행사한다면 그것은 도덕적 관점에서 볼 때 단순한 실망 이상이 될 것"이라고 비난했다.
유엔 안보리는 2차 결의안 표결을 앞두고 10∼12일 잇따라 회의를 열어 이라크 사태를 논의할 예정이다.
/진성훈기자 blueji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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