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이 막 나가고 있다."11일 한나라당이 당사에서 갖기로 했던 노무현 대통령과 박희태 대표대행의 회담을 일방적으로 취소하자 한 소속의원은 이렇게 말했다. 그는 "거대야당이 '국정의 한 축'으로 역할을 다하겠다고 할 때는 언제고…"라며 "이제 부끄러워 지역구에서 도저히 얼굴을 들 수가 없다"고 토로했다.
사실 노 대통령의 방문을 거부한 한나라당의 행태는 가관이다. 한나라당은 "당사가 좁고 누추해서…"라는, 말 같지 않은 변명을 늘어놓았으나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노 대통령에 대한 피해 의식이다. 헌정사상 처음 있는 대통령의 야당 당사방문이 조명 받는 게 싫었던 것이다. 그렇게 되면 대통령이 특검법에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된다는 것이다.
억지이고 오만이다. 의석 과반수를 가진 정당이 특검법을 단독 통과한 것이 적법절차였다고 주장한다면, 대통령의 거부권도 인정해야 한다. 정말로 거부권을 행사했을 때 잘잘못을 따지는 것은 그 뒤의 일이다. 더구나 자신들이 '자신의 집'으로 초청해놓고 "거부권 무서워서 우리가 청와대로 가겠다"는 것은 정말 조금도 달라지지 않은 구태의 정치와 다름 아니다.
일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박 대행과 당직자들은 12일 청와대 오찬의 참석범위를 놓고 옥신각신했다. 당직자들은 "혼자 갔다오라"며 박 대행의 등을 떠밀었고, 박 대행은 굳이 함께 갈 것을 고집했다. 양측 모두 회담 결과에 대한 책임과 구설수를 피해보겠다는 '면피'의 자세다. 회담에 응하긴 했지만, 의미 있는 회담으로 만들 생각은 애초 없는 것이다.
더도 말고 사과의 말 한마디만이라도 들었으면 좋겠다.
유성식 정치부 차장대우ssyo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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