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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포커스 / 건축가 김원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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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포커스 / 건축가 김원씨

입력
2003.03.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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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 김원(60)씨는 서울 옥인동에 산다. 서울 강남하고도 반포동 아파트에 살던 그 이는 1976년 '건축가가 아파트에 살다니' 싶어서 강북으로 와서 창덕궁과 경복궁 사이, 즉 계동 가회동으로 이어지는 북촌 마을의 집들을 훑고 다녔다. 어린 나이에 부산에서 올라온 뒤 경기 중·고 6년을 다니면서 익숙한 동네이기도 했다. 그러다가 마음에 드는 집을 발견한 것은 오히려 인왕산이 왼편으로, 청와대가 자리잡은 북악산 애기봉이 오른쪽으로 보이는 옥인동 산꼭대기에서였다.그는 팔려고 나온 집도 아닌 집을 2년간 기다려 사게 됐고, 원래 있던 집을 건축가답게 고쳐서 살고 있다. 안방 화장실 변기에 앉으면 정선의 '인왕제색도'가 재현되는 집이다. 그리고 80년에는 세 칸 짜리 한옥을 가져다가 별채도 지었다. 전화나 텔레비전은 물론 구들조차 없는 이 별채는 그가 '행복한 빈둥거리기'를 즐기는 그만의 공간이다. "경복궁 서편에서 인왕산에 이르는 중촌(中村) 지역은 조선시대 중인들의 문화인 위항문화가 발전한 의미깊은 곳입니다. 중인들이 많이 모여살면서 시문회를 열면 걸출한 문인을 초청도 했지요.

이 집이 있는 송석원길도 바로 중인이 살던 '송석원'에 초청된 추사가 그 정자 이름을 바위에 새겨준 데서 유래한 것입니다." 조선시대 하면 양반문화만 연상하지만 사화의 피해를 입지 않고, 상인계급의 중추로 중국을 다니며 외래문화를 빨리 흡수한 중인들의 위항문화가 이 못지않게 중요하다고 김씨는 강조한다. 중촌은 위항문화의 현장만은 아니다. 김씨의 집 아래는 바로 겸재 정선의 정자인 인곡정사 터이고, 박팽년의 집이나 세종대왕이 태어난 집도 중촌에 있다. 백사 이항복이 살던 집도 바로 이 중촌인데 지금은 바위에 '필운대'라는 흔적만 남아있다고 한다.

조선시대 유적만 있는 것이 아니다. 윤동주가 연희전문 다닐 때 하숙하던 집은 누상동에 있고, 소설가 이 상이 4세때부터 24세때까지 산 집은 통인동에 있다. 김수임이 살던 집도 얼마전까지 옥인동에 옛모습 그대로 남아있었다. 그러나 시간을 다투어 이런 문화 유적들이 사라져간다. 윤동주의 하숙집에는 다세대 주택이 들어섰고, 김수임의 집은 밥집으로 바뀌었다.

"작년에 윤동주를 사랑하는 일본 후쿠오카 사람들이 윤동주의 하숙집을 찾아왔어요. 그가 시 '자화상'에서 쓴 우물이니 골목이니 하는 것들은 그대로 남아있는데 그 집만은 다세대 주택이 들어섰으니까 그 일본인들이 그 주소지 앞에서 사진을 찍고 가더군요. 일본에 가보면 소설가가 잠시 머물며 산보하던 길조차 보존을 해서 관광자원으로 알리고 있는데, 우리는 우리의 소중한 것을 너무나 소홀히 합니다."

그는 가장 근본적인 것이 문화유적을 전체로서 보지 않고 유적지 한 군데만을 중시하거나, 건축물로서의 가치가 있는 건축물만을 보존할 뿐 정신적인 가치가 높은 근현대 유적은 도외시하는 문화재 보호법의 제 규정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가령 북촌의 한옥은 건축물로서 가치가 있으니까 지켜야 한다면서도 이상이나 윤동주 문학의 산실은 건축물 자체는 의미가 없다며 손을 놓고 있으니 딱합니다.

이 같은 문제는 비단 오래된 집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미당 서정주가 살던 집을 친일파의 유적이라며 보존을 반대하는 데서도 잘 드러나지요." 그런 점에서 그는 서울의 북촌과 중촌 같은 오랜 역사의 흔적들이 있는 지역은 전체를 '고도(古都)보존법'의 개념을 적용해 보존하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동안은 그나마도 청와대 주변의 건축제한에 묶여 이 지역들이 옛모습을 간직할 수 있었으나 이런 제한이 서서히 풀려가는데다 강북재개발의 바람이 잘못 불면 말끔한 빌딩들로 역사어린 골목길이 사라져갈 것이 불보듯 환하기 때문이다.

"건축이란 집이나 건물 한 채를 잘 짓고 사는 것이 아니라 마을이 살고, 공동체가 살아서 사람들이 오래 자기 문화를 지키면서 행복하게 살게 하는데 궁극적인 목적이 있다"며 "이 지역에 사는 사람들의 생활은 더 편해지고, 문화흔적도 지킬 수 있는 재개발의 방안을 찾아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원씨는 서울대 건축과를 나와 김수근의 문하에서 건축을 익혔으며 현재 건축환경연구소 광장 대표이다. 그가 지은 집으로는 국립국악당, 통일연수원, 주한러시아대사관 등이 유명하다. 그는 또한 영월댐 백지화 운동에 앞장서 동강을 살렸으며, 88년에는 백남준과 '다다익선'을 공동제작하기도 한 르네상스적 문화인이다.

서화숙 편집위원 hssu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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