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걸로 곱셈은 못 하는데요."어느 은행 여직원이 며칠 전에 내게 한 말. 대출금 때문에 은행에 갔더니 일부를 갚으면 얼마가 남는다는 계산을 손에 익어 보이는 낡은 주판으로 해주었다.
흔한 계산기며 단말기가 아닌 주판으로 계산하는 게 신기해서 매월 이자도 계산해 달라고 했더니 "주산으로 덧셈, 뺄셈은 해도 곱셈은 못한다"고 수줍게 웃으며 말했다.
그러고 보면 첨단, 신기술, 신인력, 신시대, 새 부대, 새 술에 우리가 얼마나 취해 왔던가. 무슨 일만 있으면 일소, 척결, 전쟁, 대청소를 하는 바람에 주판은 예전에 없어졌다. 주판의 사라진 동지들= 등사판, 신기료 가게, 지게꾼 등등….
그런데도 아직 그걸 갖고 있는 은행원이 있고, 실제로 쓰고 있으니 이 은행은 믿을 만하다고 느꼈다.
계산기는 계산기대로, 주판은 주판대로, 온라인은 온라인대로, 오프라인은 오프라인대로 평등하게 존재하고 주객이 그걸 소용(所用)하는 한 그 집안은 절대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곱셈은 계산기로 하면 된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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