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권은 참여정부를 표방하고 있다. 아울러 새 대통령은 토론의 정치와 문화를 강조하고 있다. 경영이론에서도 조직 내에서 의사소통과 민주적 리더십이 강조되고 있는 실정이고 보면, 참여 정부란 말은 시의 적절한 작명이라고 하겠다.문제는 일반 국민들이 어떻게 정부 일에 참여할 수 있고, 그와 같은 적극적인 참여의 결과가 어떻게 나타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월드컵 축구 응원이나 촛불 시위와 같은 일이라면 남들을 따라 하면 되고, 사람이 많이 모일수록 효과적일 것이다. 그러나 국정 목표의 하나인 동북아 중심국가 건설이라든지, 평화와 번영과 같은 것이 과연 대중의 참여를 통해 달성될 수 있을 것인지는 생각해볼 여지가 많다.
참여와 토론은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의 하나이지, 그 자체가 목표는 아니기 때문에 과제별로 적절한 방식을 써야 한다. 많은 수의 참여가 오히려 상황에 맞지 않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되는 문제의 경우 많은 사람이 참여할수록 파국이 오기 쉽다. 이 경우에는 제한된 소수가 머리를 맞대 적절한 타협책을 만들고, 이해 당사자 대표들이 흥정하게 하는 것이 낫다. 문제가 복잡한 경우에도, 참여자가 많다고 해서 반드시 좋은 아이디어가 나오는 것은 아니다. 자칫 구성원의 동조 경향에 의해서 감정적인 해결책이 채택되기 쉽다.
이 때문에 조직이론가들은 참여방식을 관리하는 방법에 대해서 연구를 해왔으며, 그 결과 개인의 독자적 결정, 제한된 소수의 협의, 전문가에게 위탁하는 방법, 다수의 참여 등 다양한 방식 중 하나를 상황에 맞게 써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상황에 맞지 않는 방식은 나쁜 해결책을 가져올 뿐만 아니라, 문제를 악화시키게 된다.
전문가의 의견이 중시되어야 하는 사항인데도 다수의 여론에 따라서 정책을 정한다면, 일시적으로 기분은 좋겠지만 잘못된 결정의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에게 돌아가게 된다. 지난 정권의 대표적 정책실패 사례인 의약분업의 경우 정부가 시민 단체의 여론만 믿고, 이해 당사자의 한 축인 의사들의 전문적 의견을 무시했다. 때문에 의사들은 전문가로 대접받는 것을 포기하는 대신 실력 행사를 하게 되었고, 결국 국민 부담만 늘어나게 되었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특히 정부에서 권위주의적인 결정방식이 많았다고 해서 그 반대의 극단으로 대중적 참여와 토론에 의해서만 문제를 해결하려 든다면 또 다른 잘못을 범하게 될 것이다. 선진국 사회를 잘 들여다보면 각자가 자신의 영역에서 전문가가 되어 있고 서로 다른 사람의 전문 영역을 존중하고 있다는 특징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이러한 전문화를 통해 각자가 자신의 영역에서 사회에 참여하고 있으므로, 제각기 자신의 일을 묵묵히 하면서도 사회는 무리 없이 잘 돌아가게 된다. 그래서 사회이론가들은 현대 사회의 특징을 전문화라고 말한다. 자동차 수리 전문가, 꽃꽂이 전문가, 축산 전문가, 교육 전문가 등 몇 십년씩 한 분야에서 자신의 일을 해왔기 때문에 존중을 받는다. 전문가를 존중하고 제각기 전문가가 되는 방식이, 모든 사람들이 모든 문제에 대해서 왈가왈부하는 것 보다 사회 전체로 볼 때 훨씬 효과적이다.
특히 복잡다단한 현대사회의 문제를 몇 가지 단편적 생각을 가지고 판단하고, 이를 바탕으로 사회 전체를 바꾸어 보려고 하려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다. 모두가 다 모든 일에 참여하겠다고 길거리에 나서고 인터넷 게시판에 의견을 올리는 일에 열중한다면, 그리고 이러한 참여 방식을 조장하는 분위기가 만연한다면, 겉으로는 사회가 활성화한 것처럼 보이지만 선진국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어질 뿐이다. 빈 수레가 요란하다든지, 깊은 물은 소리가 나지 않는다는 우리 속담은 헛된 말이 아니다.
홍 기 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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