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금실 법무부 장관의 취임사에서 기자에게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법무부가 그 동안 소홀히 한 일로 인권 보호를 거론한 대목이었다. 강 장관은 이 대목에서 특히 여성이나 아동, 장애인이나 이주노동자 같은 소수자들의 인권 보호를 강조했다. 그것은 법무부를 검찰과 오롯이 포개놓고만 바라보던 우리 사회 다수의 관습적 편견을 신선하게 바로잡는 발언이었다. 그리고 그 발언은 1980년대의 판사 시절부터 근년의 한국 인권 재단 활동에 이르기까지 늘 법을 인권의 버팀대로 생각하고 그 생각을 실천에 옮겨온 자유주의적 법률가에게 걸맞은 발언이기도 하다.법무부의 홈페이지에는 이 부서의 영어 이름이 Ministry of Justice라고 기록돼 있다. 사실 이 명칭이 통용되는 영어권 사회에서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나라에서 법을 관장하는 행정부서를 영어로 부를 때는 Ministry of Justice나 Department of Justice라는 이름을 사용한다. 거기서 Justice는 법조(法曹)·재판·법무의 뜻이지만, 그 말의 일차적 의미는 다 알다시피 정의·공정함·올바름 따위다. 이런 다의성은 법의 정신을 다른 무엇보다도 정의의 실현에서 찾았던 언어 대중의 상상력을 반영하는 것일 터이다.
'인간과 시민의 권리 선언'(1789)으로 시동을 건 프랑스 혁명 이후의 시민민주주의 전통 속에서, 인권은 국경을 넘고 바다를 건너 선언문들을 두툼히 쌓아가며 정의의 리스트 맨 윗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그래서 오늘날의 앞선 민주주의 사회에서 인권은 정의부 곧 법무부의 가장 중요한 소관 사항이다.
물론 어느 사회에서나 인권의 마지막 수호자는 사법부다. 그러나 법원은 근본적으로 수동적 기관이다. 그 수동성은 삼권분립의 제창자들이 사법부에 합당하게 부여해 놓은 운명이다. 또 우리의 국가인권위원회처럼 대통령이나 총리 직속으로 인권위원회를 설치한 나라들도 많지만, 대개 머리만 크고 손발이 모자란 기관이어서 인권 보호 활동을 상시적으로 광범위하게 수행하기 어렵다.
반면에 정의부 곧 법무부는 능동적으로 일을 추진하는 것이 운명인 행정부서고, 손발이 아쉬운 것도 아니다. 대다수 한국인들이 법무부라는 말에서 자연스럽게 인권을 연상하지 못한다는 것은 그 동안 법무 행정 담당자들이 게을렀거나 검찰이 엇나갔다는 뜻일 수도 있다. 원론 차원의 얘기지만, 법무부가 인권 옹호의 주무 부서로서 제 할 일을 다 했다면 굳이 여성부나 국가인권위원회가 설치될 필요도 없었을 것이고, 보건복지부나 노동부의 일감도 많이 줄어들었을 것이다.
이제 강 장관은 법무부를 그 본래의 뜻대로 정의부로, 인권보호부로 탈바꿈시키려 하고 있다. 그것이 쉬운 일은 아닐 터이다. 법무부 안팎의 법률가들 가운데는 법과 인권을 자연스럽게 연결시키는 강 장관의 상식을 서먹하게 느낄 사람들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길은 언제 가도 가야 할 길이고, 일찍 갈수록 좋은 길이다. 그리고 그 과정은, 일의 성격상 인권 침해의 유혹에 노출되기 쉬운 검찰에 대한 독립적 감독의 강화를 마땅히 포함해야 할 것이다.
취임사에서 소수자 인권을 거론하면서, 강 장관이 재소자 인권을 빠뜨렸다는 것을 지적해야겠다. 변호사 시절의 경험을 통해서, 강 장관은 우리 사회의 재소자들이 일상적으로 겪는 인권 침해를 적어도 짐작은 하고 있을 것이다. 인권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태어나면서부터 지니게 되는 자연권이다. 이 기본적 권리의 향유에서 재소자들이 제외돼야 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강 장관의 인권 우위 정책은 특히 교정 행정에 무게를 두어야 옳다. 재소자들은 강 장관이 거론한 다른 소수자들과 달리, 다른 행정 부서들의 눈길을 받을 수 없기 때문에 더 그렇다. 조금 뒤늦었지만, 국무위원 취임을 축하 드린다.
고 종 석 논설위원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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