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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이 죽으면 사람도 죽는데… 왜 모르죠?"/지율 스님 고속鐵 금정·천성산 관통반대 단식 한달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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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이 죽으면 사람도 죽는데… 왜 모르죠?"/지율 스님 고속鐵 금정·천성산 관통반대 단식 한달째

입력
2003.03.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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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단식을 하는 것은 비단 경부고속철도의 금정산, 천성산 통과를 반대하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생명이 얼마나 소중한지, 그 생명을 지닌 자연은 또 얼마나 경외한 대상인지 사람들이 한번쯤 생각했으면 하는 뜻에서 입니다." 경부고속철도의 금정산, 천성산 관통 백지화를 요구하며 부산시청 앞에서 10일로 34일째 단식농성중인 천성산 내원사의 비구니 지율스님. 노무현 대통령이 7일 노선 재검토를 지시하고 문재인 청와대 민정수석이 부산에 내려와 불교계, 시민단체 관계자에게 대통령의 뜻을 전했지만 스님은 단식을 멈추지 않았다. "원하는 것은 백지화인데, 정부가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 모호한 태도만 보이고 있습니다."금정산은 동래산성 등 문화유적과 범어사가 자리한 부산의 진산. 천성산은 맑고 고운 계곡과 무제치늪 등의 습지로 유명한 생태계의 보고다. 스님은 경부고속철도가 두 산을 뚫고 지나가면 생태계가 망가지고 도량 환경이 나빠질 것이라는 생각에 지난달 5일 백지화를 요구하며 단식을 시작했다. 노 대통령의 재검토 지시도 스님의 단식이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스님은 한 달이 넘도록 간간이 육모초 달인 물로 목만 축일 뿐 일절 먹지 않았다. 이미 한계를 넘은 시간이라 몸 상태는 말이 아니다. 그런데도 나직이 내뱉는 목소리는 여전히 맑고 또렷하다. 초롱한 눈망울만큼이나 그의 생각도 명쾌하다. "산에도 생명이 있습니다. 산이 죽으면 사람도 죽습니다. 산을 지킬 수만 있다면 더 힘들고 험한 일도 마다하지 않겠습니다."

천성산 보존운동을 하면서 찍었다는 생후 7일된 소쩍새 사진을 자랑하듯 보여주며 "예쁘죠"라고 되묻는 스님의 얼굴에는 한달 이상 단식한 사람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여유와 천진함이 묻어 있었다.

이 절, 저 절 다니며 만행하던 스님은 2000년 2월 내원사로 옮긴 뒤 줄곧 천성산 보존 운동을 하고 있다. 사람들이 길을 낸다며 산을 마구 파헤쳐놓은 것을 보고 도저히 그냥 있을 수 없었단다. "발이 닳도록 산을 오르내리면서 작은 벌레와 이름 모르는 들꽃, 숲을 지키는 새 노루 고라니와 만나면서 '너희들의 생명을 꼭 지키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스님은 단식 23일째 되던 날, 지금까지 써본 적이 없는 시를 썼다. '…잠시 칩거하고 있는 이 작은 공간, 몸을 펼 수 없는 낮은 지붕, 온기 없는 차가운 바닥, 그러나 생명을 노래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모여든다…. 새와 풀벌레 우는 숲과 강을 그리워하며….'

스님은 두 평 남짓한 좁고 불편한 천막에서 자정부터 새벽 다섯시까지 다섯 시간을 자는 둥 마는 둥 눈을 붙인 뒤 예불을 올리고 참선도 한다. 천막에 같이 있는 통도사 심오스님은 "동료 스님은 물론 시민단체 회원, 신부님, 목사님도 많이 찾아줘 힘이 된다"고 말했다.

지율스님은 "정부가 자성해 금정산 천성산 관통 계획을 백지화해야 한다"고 거듭 촉구했다.

/부산=글 김창배기자

사진 이성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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