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인세 인하 논란, 교육부총리 인선, 정통부 장관 자격 시비, 검찰 인사 파문 등 최근 굵직굵직한 현안이 연이어 돌출되고 있지만 고건(高建) 총리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시작할 때는 '책임총리'라고 했지만 이전의 총리들과 별로 달라진 것이 없다는 말도 나온다."내각에 권한과 책임을 대폭 위임하겠다"는 노무현 대통령의 다짐에도 총리실 주변에서는 책임총리제가 본 궤도에 오를지 우려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고 총리는 요즘 대구 지하철 방화 참사의 수습에 집중하고 있다. 건교부 장관에게 전화를 해 점검반 구성을 지시하고 서울지하철공사를 찾아 근무기강 해이를 호통쳤다. "최우선적 현안"이라는 게 총리실의 설명이지만 어딘지 개운치 않아 보인다. 정작 첫 국무회의에서 벌어진 대구 참사 대책 토론에서 총리는 별 말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번 주에도 딱히 책임총리의 행보로 볼 만한 일정은 없다. 이렇다 보니 총리실 안팎에서는 "청와대가 사안마다 직접 대응하니 총리의 입지가 좁아진다"는 소리도 흘러 나온다.
첫 조각 발표 이후에는 인선 작업에도 크게 관여하지 않았던 듯하다. 그는 교육부총리의 인선에 참여했는지를 묻자 "대구대 이사장과 인연이 깊다"고만 말하고 별 언급을 하지 않았다. 정통부 장관의 이중국적과 아들 병역기피 시비 등에 대한 대책을 건의할 것인지를 묻자 "생각이 없다"고 했다.
총리실은 "아직 책임총리를 뒷받침할 제도적 기반이 갖춰지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즉, '단기필마의 형국'이라는 것이다. 지난 6일 고 총리가 '미군 재배치 3원칙'을 들고 나왔던 것도 '권한 찾기'를 위한, 다분히 의도된 제 목소리 내기로 봐야 한다는 해석도 나온다. 총리는 "당연한 원칙이어서 청와대와 사전 조율이 없었다"고 했고 외교부 등에서는 맞장구를 치면서도 떨떠름한 모습이다. 이번 주 5차례의 방송 인터뷰를 갖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보인다.
총리실은 국무조정실 차관급 2자리 신설 등 직제 개편을 두고 조만간 있을 청와대와의 협의가 책임총리의 실현의 리트머스 시험지가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대통령령으로 조기도입되지 못하면 책임총리제의 실행이 늦춰져 내각 통할은 물론 청와대 수석이 없어진 사회 분야의 조정 기능도 당분간 공중에 뜰 수 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다른 편에서는 "총리가 말했던 대로 지금이라도 대통령이 '고(高, go)' 할 때 '노(盧, no)' 하면 되지 않느냐"고 꼬집는다. 제도개선도 물론 필요하지만 총리의 의지가 보다 중요하다는 것이다.
/안준현기자 dejav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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