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 열흘 사이에 세 문인이 타계했다. 소설가 이문구씨와 수필가 박연구씨, 시인 조병화씨가 차례로 유명을 달리했다. 문학의 각 장르에서 일가를 이룬 주요 문인들이다. 죽음 만큼 외면하거나 멀리하고 싶은 것도 없지만, 그만큼 공평한 것도 없는 듯하다. '죽음의 신은 어느 집앞에도 무릎을 꿇는 검은 낙타'라는 화려한 수사를 동원한 외국속담도 있다. 불가항력적 비보 앞에서 진한 슬픔을 느낀다. 예술인의 부음을 들을 때는 깊은 개인적 감상에 이어 '이제 누가 고인의 개성 있는 예술적 성취를 대신할 수 있을까'하는 공리적 상실감이 따라온다.■ 이문구씨는 한 세대 전 농촌 인물들이 지녔던 정서와 세계관을 정겹고 건강하게 복원시키는 데 탁월했다. 토속적 언어가 빛나는 연작 농촌소설 '관촌수필' '우리 동네'등을 통해 독보적인 인물 묘사와 문체를 이루었다. 가장 이채로운 스타일리스트였던 그의 작업을 이을 작가는 찾기 힘들다. 보수적 문인인 고(故) 김동리 서정주의 제자이면서도, 진보적 문학단체에서 중심 역할을 해왔던 그는 두 세력을 잇는 연결고리이기도 했다. 두 진영이 함께 그의 장례식을 치름으로써 문단통합의 한 징검다리가 놓여졌다.
■ '바보네 가게'의 수필가 박연구씨는 평생을 수필 쓰기와 진흥에 매달려 왔다. 한국수필문학진흥회장이었던 그는 지난해 수필집 한 권을 보낸 적이 있다. 그 책에는 99년 말 쓴 '즈믄해의 수필'이라는 내 '지평선' 칼럼이 서운했다는 수필이 실려 있었다. 수필이 지성인의 사랑을 받던 20세기가 끝나 가면서 애석하게도 수필은 세계적으로 사양 길에 접어든 장르처럼 보인다는 지적에 대해, 그는 부드러운 문체로 항의하고 있었다. "죄송하다"는 말을 할 기회를 갖지 못한 것이 다시 죄송하다. 그러나 그 '지평선'이 본디 수필의 건강한 부활을 염원했듯이, 수필문학이 힘차게 일어서기를 희망한다.
■ 조병화씨는 현대적이지만 평이한 시어(詩語), 소박한 비유와 어법으로 수많은 대중의 사랑을 받아왔다. 넉넉한 인품으로 문단의 각 진영을 함께 끌어 안으려 한 그는 너무 심각하지 않은 언어로 사랑과 이별, 고독과 방황을 노래하며 한 시대를 위로해온 대표적 시인이다. 고흐가 자살하기 전 동생 테오에게 쓴 편지를 떠올리면서 작고한 세 문인의 명복을 빈다. 그는 세계적으로 가장 사랑받고 있으나 생전에는 작품이 거의 팔리지 않았던 불우한 화가다. <사자(死者)를 죽었다고 생각치 말자 생자가 있는 한 사자는 살 것이다>사자(死者)를>
/박래부 논설위원 parkrb@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