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대수롭지 않게 지나치는 패턴이나 소품도 서양인들에게는 마냥 신비롭고 이국적으로 느껴지는 모양이다. 수년간 이어져온 요가와 명상의 인기를 등에 업고 해외 유명 브랜드들의 봄·여름 신상품에 동양풍의 옷과 액세서리가 눈에 띄게 늘었다. 일일이 손으로 수놓은 독특한 패턴, 일본 기모노처럼 몸에 자연스럽게 감기는 화려한 천, 목까지 올라오는 중국풍 옷깃…. 기존의 '에스닉룩'보다도 훨씬 짙은 동양풍 패션이 올 유행의 한 축으로 떠올랐다.지난달 까르띠에(Cartier) 보석 '용의 키스' 출시를 기념하는 행사장은 중국 부호의 연회장을 연상하게 했다. 붉은 빛이 주를 이룬 인테리어와 커다란 중국 등을 배경으로 거대한 용의 춤이 이어졌다. 이번에 새로 선보인 '용의 키스'는 중국의 풍경(風磬)을 닮은 귀고리와 브로치, 실크 매듭을 닮은 목걸이 등 기존의 라인과는 사뭇 색다른 독특한 디자인을 선보였다.
인도 열풍은 '발리우드'로 상징되는 영화나 요가에서만 드러나는 게 아니다. 올해 봄·여름 패션 컬렉션에서는 금발과 푸른 눈의 팔등신 모델이 인도 전통의상을 입은듯한 모습을 쉽게 찾을 수 있다.
프랑스 브랜드 '세린느(Celine)'는 손으로 하나하나 물들인 인도풍 천을 중심으로 한 다양한 디자인을 선보였다. 끈으로 묶어 천연 소재로 염색한 화려한 패턴과 한땀 한땀 일일이 손으로 수놓은 반짝이는 문양들은 인도의 '사리'나 인도네시아의 '바틱'을 연상하게 한다.
옷과 어울리는 인도풍 액세서리도 눈에 띈다. 아예 인도의 도시 이름을 딴 '부기 봄베이'라는 스웨이드 핸드백은 인도의 가죽 장인이 직접 재단해서 만든 듯한 모양새다. 그 밖에 맨발에 어울리는 내추럴한 가죽 샌들, 각종 금속을 두드려 만든 커다란 귀고리나 팔찌는 브랜드가 표방하는 '쿨 오리엔탈리즘(Cool Orientalism)'을 완성하는 소품이다.
대나무 조각 장식으로 유명한 '구찌(Gucci)'도 본격적인 동양풍 디자인을 내놓았다. 세린느와 다른 것이 있다면 인도보다는 일본의 전통 의상에서 영감을 얻었다는 것. 관능적인 짧은 원피스나 자연스럽게 걸친 실크 재킷에는 동양화를 연상시키는 대나무와 꽃 무늬가 화려하다.
이태리 브랜드 '미우미우(miu miu)' 봄·여름 컬렉션에도 붓으로 그린듯한 프린트가 대거 등장했다. 프린트 뿐 아니라 몸에 붙는 라인과 목까지 올라오는 소위 '차이나 칼라', 여성스러운 광택소재 등으로 중국과 일본 전통의상을 묘하게 섞어놓은 듯한 느낌을 준다.
동양풍 패션은 마이크로 미니스커트나 하이힐 등 '섹시룩'과 잘 어울린다. 짧은 스커트에 '차이나 칼라' 셔츠를 매치한 후 앞코가 뾰족한 구두를 신으면 관능적인 동양풍 섹시룩을 연출할 수 있다. 현대적인 동양풍 패션은 길게 늘어지는 것이 아니라 짧고 단정하다는 것에 유의해야 한다. 대나무 손잡이가 있는 핸드백, 선홍색의 굵은 진사(辰砂) 팔찌, 작은 옥귀고리나 목걸이 등으로 포인트를 주면 좋다.
패션정보전문회사 '아이에프네트워크(www.ifnetwork.co.kr)' 이경희 부장은 "여행이나 탐험에 대한 관심이 늘면서 해외 유명 디자이너들은 동양의 여러 전통을 접목시킨 다문화적 패션에 눈을 돌린다"며 "중국, 일본 등은 물론 베트남이나 인도네시아, 몽골, 인도 등의 전통의상이 독특한 방식으로 합쳐져 '모던 오리엔탈리즘'이라는 새로운 흐름을 낳고 있다"고 말했다.
/김신영기자 ddalg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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