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은 피할 수 없는 것인가."영국이 17일을 무장해제 시한으로 설정한 '최후 통첩성' 이라크 2차 결의안 수정안을 제시함에 따라 이라크 사태가 숨가쁘게 전개되고 있다.
이라크전 몰이에 나선 미국, 영국과 이에 반대하는 프랑스, 러시아, 독일 등은 9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이사국들을 상대로 치열한 로비전을 펼쳤다. 하지만 미국은 유엔 결의안 통과 여부와 관계없이 이라크 무장 해제에 나서겠다는 입장이어서 17일 직후 개전 가능성에 상당히 무게가 실리고 있다.
잭 스트로 영국 외무장관은 7일 유엔 안보리 회의에서 "12년간 안보리에 대항해온 불량 국가의 무장 해제를 평화적으로 달성하는 유일한 길은 무력의 힘으로 외교를 뒷받침하는 것뿐"이라고 주장하며 수정안을 회람시켰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8일 이라크의 무장해제를 위한 무력 사용 의지를 밝히는 한편 리카르도 라고스 칠레 대통령과도 통화하는 등 수정안 지지를 얻기 위한 외교 행보에 본격 나섰다. 부시 대통령은 라디오 연설을 통해 "전쟁을 피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하겠지만, 사담 후세인(이라크 대통령)이 평화적으로 무장해제를 하지 않는다면 무력을 사용해서라도 무장해제 시킬 것"이라고 강조했다.
미국과 영국은 11일 이후 수정안에 대한 표결을 추진할 방침이지만 현재의 판세로는 통과 가능성이 희박하다. 안보리 결의안 통과는 15개 이사국 중 9개국 이상의 지지를 얻고 5개 상임 이사국의 거부권 행사가 없어야 가능하다.
하지만 상임 이사국 가운데 프랑스와 러시아, 중국 등이 수정안에 부정적인데다 관망 입장에 있는 다른 이사국들도 새 결의안에 선뜻 찬성하지 않고 있다.
도미니크 드 빌팽 프랑스 외무장관은 "프랑스는 자동적 무력 사용을 승인하는 결의안의 통과를 허용치 않겠다"며 거부권 행사 가능성을 시사했다.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은 수정안 저지를 위해 안보리 이사국 정상회담 개최를 추진하고 있다.
한편 이라크의 모하메드 알 두리 유엔주재 대사는 수정안에 대해 "어리석은 제안"이라고 비난했다. 이라크 정부는 8일 잠시 중단했던 알 사무드 2 미사일 파기 작업을 재개하는 한편 "중동 지역 뿐 아니라 미국까지도 대량 파괴 무기를 금지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하는 등 양면 전략을 폈다.
이런 가운데 미·영 연합군의 병력 증강 등 전쟁 징후가 곳곳에서 나타났다. 미국과 영국 등은 걸프 지역 동맹군 병력을 30만명 가량으로 증원하고, 10일부터 실전과 유사한 훈련에 들어갈 것이라고 군 관계자들이 밝혔다. 또 유엔 이라크· 쿠웨이트 감시단(UNKOM)은 쿠웨이트―이라크 접경 지역의 경계 수준을 '3단계 적색 경보'로 상향 조정하고 이 지역 민간인을 쿠웨이트시티로 후송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미국은 후세인 망명 추진 등의 극적인 상황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한 17일 직후에 이라크 공격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 국내외의 거센 반전 여론도 변수이지만 결정적 제동 장치가 되기는 어려울 것 같다.
미·영이 17일까지 사담 후세인에게 대량 파괴 무기와 관련한 115개항의 질문을 제시, 해명을 요구할 것이라는 보도도 이런 분위기를 뒷받침한다.
/김광덕기자 kdkim@hk.co.kr
● 2차 결의안 수정안
영국이 7일 유엔 안보리에 제의한 수정안은 2차 결의안에 다음의 내용을 첨가한 것이다. "3월17일까지 이라크가 무장해제 의무에 관해 전적이고 무조건적으로, 즉각적·적극적으로 협력해왔다고 입증하지 않는 한, 또 유엔 결의를 위반한 모든 무기와 운반·지원 체계 및 구조물 등에 대한 정보와 이미 폐기된 무기 등에 관한 정보를 사찰단에 넘기지 않는 한 이라크가 유엔 결의 1441호에 의해 부여된 무장해제의 마지막 기회를 취하지 않은 것으로 결정한다."
지난 해 11월8일 안보리에서 만장일치로 통과된 1441호 결의안은 "이라크가 유엔의 무장해제 요구를 수용하지 않을 경우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내용이고 지난달 24일 미국 영국 스페인이 공동 제출한 2차 결의안은 "이라크는 1441호 결의안에 부여된 최후의 기회를 잡지 않았다"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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