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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데이 포커스 / 실물경기 현장르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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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데이 포커스 / 실물경기 현장르포

입력
2003.03.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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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시장은 연일 사상 최저치를 경신하고, 물가는 연초부터 고공행진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고급 쇼핑가와 일선 산업현장마저 대내외 경제의 불확실성으로 인해 흔들리고 있다. 각 백화점의 매출이 지난해 동기에 비해 10% 내외씩 떨어지더니 '불경기 무풍지대'인 명품시장까지 올 들어 마이너스 성장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유가인상의 직격탄을 맞은 중소기업계는 "두어 공장 건너 한 공장은 이달 내로 문 닫는다"는 이유있는 푸념이 나돌 정도로 휘청거리고 있다.

고급상품시장도 삐걱

부유층이 지갑을 닫았다. 돈은 불경기 때 써야 돋보이는 법이라 외환위기 당시에도 호화쇼핑을 멈추지 않던 부자들의 씀씀이가 눈에 띄게 조심스러워졌다.

8일 오후 서울 청담동의 로데오 거리. 명품 매장이 즐비해 부유층 젊은이의 쇼핑 메카로 자리잡았지만 요즘에는 '손님을 모시는' 매장을 찾아보기 힘들다. 사브, 벤츠 등 고급 외제차와 화려하게 차려입은 채 아이쇼핑을 즐기는 젊은이들만 오고 갈 뿐.

한 의류매장의 매니저는 "봄·여름 신상품으로 새단장한 2월말부터는 본격적으로 매출 기지개를 펴야 하는데 지난해 끝물 장사보다도 못하다"고 토로했다. 그는 "이 동네 매장의 사장들이 재산가여서 그럭저럭 버티고 있다"며 "다른 지역의 중저가 의류점은 이 '꽃샘 추위'를 어떻게 견디느냐"고 되물었다.

로데오 거리의 상인들이 고가상품 시장까지 덮친 불경기를 손 놓고 바라본 것도 아니다. 지난해 말부터 공동 마케팅 전략회의를 열어 영업 종료시간을 오후 7시에서 밤 10시로 연장해 보기도 했고, 주차장마다 쇼핑객만을 위한 주차요원을 배치하기도 했다. 세일기간을 두배로 늘리거나, 추첨을 통해 수십만원짜리 상품권을 선물하는 등 로데오 거리의 '자존심'을 내건 이벤트까지 준비했었다.

결과는 참패. 매출은 기대치 이하였고, 일부 업체들이 이월상품 정리를 위한 반값 세일이라는 '반칙'을 해 상인들간의 말싸움이 벌어지기도 했다. 한 명품매장의 사장은 "로데오 거리의 상인들이 유례없는 이벤트와 사은행사를 선보이자 구경하러 오는 사람만 늘었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강남구 압구정동 현대백화점의 1층 화장품 매장도 평소 같으면 점포당 10명 내외의 손님이 항상 몰려있을 테지만 이날은 1층을 통틀어 30여명이 고작이었다. 수입 S화장품을 판매하는 점원은 "지난해 이맘때에는 손님 10명이 오면 서넛은 실제로 구매했는데 이번달에는 한두명이 물건을 사가면 성공한 것"이라며 "그나마 매장을 들르는 손님도 평소의 50%정도밖에 안된다"고 말했다.

불경기의 동네북, 중소기업 공단

"문구 제조업체의 절반이 올해를 넘기기 힘들 것 같습니다."

8일 오전 인천 남동공단의 볼펜제조업체 P사는 볼펜 수성펜 중성펜 특수펜 등 5개 생산라인 중 수출주력 품목인 중성펜 라인만을 가동하고 있었다. 그럭저럭 내수가 받쳐주던 볼펜과 수성펜 라인은 1월부터 주문이 끊겨 만 1개월 동안 스위치가 내려져 있었다.

지난해만 해도 5∼6개월치 수출 오더를 쌓아놓고 쉴새없이 생산하던 중성펜도 올해는 2개월치 수출물량밖에 확보하지 못했다. 박모 사장은 "2∼3개 바이어와의 계약이 깨져도 문제없을 정도의 여유가 있었는데 이제는 한 바이어하고만 틀어져도 곧장 부도"라고 털어놨다.

게다가 원료는 현금으로 구입하고, 완제품은 외상으로 판매하는 구조에서 원유가 인상으로 플라스틱 수지류의 가격이 오름에 따라 수출 오더가 들어와도 반길 수만은 없는 처지다. 이 회사가 한달에 15톤 가량 사용하는 폴리카보네이트(PC)의 가격은 2주새 톤당 320만원에서 340만원으로 올랐다.

경기의 바로미터인 금형업체들의 사정은 더 어렵다. 소비재를 생산하는 대기업들이 최악의 상황에 대비해 주문량을 줄임에 따라 일감이 뚝 떨어진 것. 금형업체인 경인테크의 앞마당에는 새 주인에게 팔려가는 소형 크레인, 프레스 등이 비를 맞으며 흉물스럽게 대형 비닐로 덮여있었다.

강현두 사장은 "작은 공장이라도 하나 빌려 회사의 명맥만 유지할 참"이라며 줄담배를 피웠다. 강 사장은 "시설을 정리해서라도 소나기를 피할 수 있으니 다행"이라며 "몇푼 되지도 않는 주문을 거둬들이는 대기업이 야속하기만하다"고 푸념했다.

공장들이 맥을 못추다 보니 인근 음식점, 술집들도 덩달아 흔들리고 있다. 남동공단에서 15년째 한식당을 운영해온 김선자씨는 "오후 6시 이후면 공단거리가 휑해진다"며 "지역경제가 동시에 얼어붙었다"고 전했다.

우리나라 경제의 '엔진'인 휴대폰 제조업체들도 위기를 맞고 있다.

최대 수입국인 중국시장에서 현지업체와 외국업체들의 경쟁이 격화하면서 수익성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휴대폰 개발업체인 인터큐브의 최성경 팀장은 "지난해에는 하청생산업체를 구하기 힘들 정도로 호황이었지만 올초에 생산업체를 바꾸려니까 5개 업체가 달려들었다"고 말했다.

/김태훈기자 oneway@hk.co.kr

정철환기자 ploma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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