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직장 여성들이 흔히 쓰는 단어 중에 '유리천장(glass ceiling)'이라는 말이 있다. 위를 쳐다보면 한 없이 올라갈 수 있을 것처럼 투명하지만 막상 그 곳에 다다르면 보이지 않는 장벽이 머리를 누른다는 뜻이다. 법이나 규정 상으로는 평등이 이루어진 것처럼 보이나 '실제상황'은 그렇지 않음을 의미하는 자조적인 말이다.실제로 1년이라도 직장을 다녀본 여성이라면 누구나 '유리천장' 정도를 넘어 '콘크리트 천장', 혹은 이보다 더한 '들러붙는 바닥'을 실감하게 된다. 그렇기에 최근 우리나라에서 여성장관이 전체의 24%를 차지한다거나 대기업 공채출신 여성간부가 탄생했다는 소식은 일하는 여성들에게 큰 용기를 준다. 다양성이 존중되는 21세기 지식사회에서는 패거리 문화 위주의 '남성성'보다 모성적 공동체를 지향하는 '여성성'이 리더십의 요체라는 지적도 많다.
'여성성'은 단점 아닌 무기
지난달 '당당하고 진실하게 여자의 이름으로 성공하라'(푸른숲)는 책을 펴낸 여성리더십 개발업체 (주)비즈우먼 김효선 대표는 리더의 중요한 자질로 '여성성'이 부각되는 사회가 도래했다고 강조한다.
김 대표는 "예전에 여성 경영자는 '홍일점'이라거나 특별한 사람으로만 인식돼 논의의 대상에서 제외돼 왔지만 '리더는 곧 남성'이라는 전제 아래 쓰여진 많은 리더십 이론들이 조만간 수명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예전에는 성공하기 위해 털털하고 강인해 보이는 것이 필수였지만 이제는 '여성스러움' 자체로도 충분히 승산이 있다는 뜻이다.
'성공한 여사장'의 대명사로 통하는 성주 인터내셔날 김성주 사장은 '여성성'을 통한 리더십이 무엇인지 확실히 보여주는 실례다. 얼마 전 CNN이 뽑은 '새천년 리더'에 선정된 그는 성공의 비결이 무엇인지 묻는 CNN 기자에게 '여성의 방식으로 승부했을 뿐'이라고 고백했다.
남성 사장들이 단란주점과 사우나에 끼리끼리 몰려 다니며 수천만원씩 뿌릴 때 김 사장은 이를 직원들에게 대신 돌렸다. IMF관리체제 전까지 모든 직원 자녀들에게 장학금을 준 것이나 보험혜택이 거의 없는 치과 진료를 위해 한 병원을 지정, 무료 치료를 받게 했다. 사장의 세심한 배려에 직원들의 만족도는 높아졌고 처음에는 미심쩍어 하던 남성 직원들도 마침내 사장의 진심을 알고 마음을 열었다.
김 사장은 "그 같은 혜택들은 나보다는 공동체, 회사보다는 우리 아이들이 잘 살아야 한다는 생각에 따른 배려였다"며 "여성 경영자는 '대장 기질'이 아닌 '모성'으로 기업을 이끌어가며 그와 같은 기질은 여성(female) 감성(feeling) 허구(fiction) 등 이른바 3F시대인 21세기 경영의 필수요소"라고 말했다.
여성 리더가 많은 나라가 발전한다
여성 리더십 개발은 비단 여성뿐 아니라 국가 발전에도 필수다. 현재 전세계 소비재 구매자의 80%는 여성. 이는 곧 가장 큰 고객인 여성의 마음을 얻지 않고서는 기업이 성공할 수 없음을 뜻하는 것이기도 하다. 여성이 이끄는 기업이나 조직은 당연히 우위를 점할 수 밖에 없다. 김성주 사장은 "지능지수(IQ)와 감성지수(EQ)를 고루 갖춘 인재는 곧 높은 여성지수(WQ)를 지닌다"며 "능력 있는 여성들이 중도에 포기하는 것은 국가 발전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UN이 정한 우리나라의 여성평등 순위는 세계 76위로 평균에도 미치지 못한다. 부끄러운 수치지만 우리나라에도 여성 리더십에 관한 논의가 머리를 들기 시작한 이상 희망은 있다. '아이윌비닷컴(www.iwillb.com)' 같은 여성 리더십 전문 사이트나 (주)비즈우먼 같은 전문 회사도 생겨났고 여성 CEO에 관한 책도 눈에 띄게 늘었다.
여성경영 1세대들은 미래의 여성 리더들에게 '남성들의 게임'에 말려들지 말 것을 당부한다. 김효선 사장은 "조직에서 작동되는 권력구도를 읽는 눈과 감수성을 기르는 것은 중요하지만 이것이 남성적인 파워게임에 집착하라는 뜻은 아니다"라며 "여성들이 정치적, 전략적 행동 방식을 배워 무익한 파워게임에서 희생양이 되지 않도록 방어력을 기르는 것이 중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신영기자 ddalg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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