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20대 청년이 병원으로 찾아온 적이 있다. 그는 키가 180m가 넘을 정도로 훤칠했고 인물 또한 영화배우나 탤런트를 뺨칠 정도로 준수했다. 그러나 그는 어렸을 때 허벅지 뼈에 골수염을 앓아서 무릎이 전혀 움직이지 않는 소위 뻗정다리 상태였다.무릎의 장애는 그 청년의 사고 방식을 모두 부정적으로 만들어 평생가야 미소 한번 짓지 않을 듯한 굳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청년은 자신이 그렇게 된 것은 제때에 치료를 받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부모를 원망하였다. 그의 부모도 항상 죄인처럼 지내야 했다. 청년은 몸이 성하지 못한데 배워서 뭐 하냐며 공부도 중도에 포기하였고 주위 사람의 친절과 호의도 동정에 불과하다며 거절하였다.
그 청년이 겪은 삶의 좌절감과 사회에 대한 적대감은 이해할 만한 일이다. 사실 우리나라에서 무릎을 구부리지 못하는 사람들의 생활 불편은 이만 저만이 아니다. 음식점을 가봐도 무릎을 구부려야만 식사를 할 수 있는 곳이 아직도 허다하며, 화장실에는 손잡이도 없이 재래식 변기가 덩그러니 놓여 있어 관절이 조금 아픈 사람도 사용하기 힘들다. 버스나 지하철을 타려면 걱정부터 앞서니 직업을 구해 사람 행세를 하는 것은 더욱 힘들다. 뻗정다리 정도로 이런 어려움을 겪고 있으니 그보다 심한 장애인의 고통은 더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나는 그 청년에게 몇 차례 검사를 하고 수술을 하면 무릎을 움직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해주었다. 그랬더니 청년은 나를 마치 구세주처럼 여겼다.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나고 무릎이 구부러지자 그는 온갖 불편과 수모로 십 수년간 참아왔던 눈물을 한꺼번에 쏟아 내었다.
무릎이 거의 정상으로 되돌아오자 다른 문제들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저절로 해결되었다. 그는 치료를 받게 해준 부모님께 고마워했고, 컴퓨터를 배워 취직한 뒤 예쁜 신부를 얻어 결혼도 하였다. 얼마 전 정기 정검을 받으러 왔을 때 그의 밝은 얼굴을 보며 나는 스스로 의사란 직업을 가진 것에 대하여 감사하였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먹고 살기가 좀 나아졌다고 해서 선진국 대열에 들어섰다고 스스로 우쭐대기도 하지만 사실을 알고 보면 어림도 없는 소리다. 선진국이란 것이 경제만 발달되었다고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사회나 문화적인 뒷받침이 이루어져 시민의식이 그에 걸맞게 따라가 주어야만 되는 것이다. 외국인 노동자들이 우리 나라에 와서 사람 대접을 못 받고 있고, 장애인에 대한 배려가 아직도 부족한 것을 생각해 보면 선진국은 고사하고 야만국 같다는 자괴감마저 들 때가 있다.
모든 장애인이 수술로 장애를 벗어날 수 없기에 장애인을 위한 시설을 마련해 이들에게 삶의 전환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우리 모두의 의식 전환이 필요할 때이다.
조 우 신 울산의대 교수 서울아산병원 정형외과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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