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숙 지음 문학동네 발행·8,500원원고 교정을 보던 중 대구 참사 소식이 들렸다. 자신의 등단작을 심사했던 소설가 이문구 선생이 타계했다. 고향의 외삼촌도 세상을 떠났다. 신경숙(40)씨의 다섯번째 소설집 '종소리'는 그 죽음들을 겪고 나왔다. 중편 4편과 단편 2편을 묶은 책이다. 12일 만난 신씨는 "편안하다. 작품에서 할 얘기를 다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새 소설집에는 물이 넘실거린다. 컴컴한 우물 밑바닥에 고인 물('우물을 들여다보다'), 달이 담긴 항아리 물('달의 물')이 그렇다. 물은 갈증 나는 사람의 목을 축인다. 더 거슬러 올라가 인간에게는 어머니 뱃속 기억의 전부이기도 하다. 중편 '물 속의 사원' 마지막 부분에서 물은 세상을 덮어 안음으로써 절정을 이룬다. '파도 같은 물길이 첨탑을 덮쳤으며 자동차들이 물 위에 떠다녔습니다. 물과 대지의 구분이 없어진 것 같았지요. 물은 푸른 초원과 포도밭과 철길과 무덤들까지 쓸어버렸죠. 사람들은 도로를 가득 메운 물 속을 허우적거리다가 감전으로 생명을 잃었으며 휴식을 취할 장소를 찾지 못한 새들이 허공을 어지러이 날아다니다 물 위로 떨어졌지요.'
신씨는 소설집에 실린 작품 중 '물 속의 사원'에 "가장 애착이 간다"고 말한다. 이 작품은 악어를 키우는 다방 여자와 피부관리 미용사 여자가 나누는 '관계'에 관한 이야기다. 일상의 폭력에 신음하는 두 사람이 서로를 위무하는 과정을 그렸다. "이전 작품과 달리 인물에 강렬한 성격을 부여하려 했다"고 신씨는 말했다. 작가는 인간이 맺는 관계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몇 번이나 힘주어 말했다.
표제작인 중편 '종소리'에서 대기업 월급쟁이로 17년을 살아온 남편은 경쟁회사로 옮겨갔으면서도 마음에 자리한 옛 회사에 대한 정을 내몰지 못했다. 그 심정을 아내에게 한 마디도 말하지 못했다. 아내는 세번째 유산을 했으면서도 남편에게 말하지 못했다. 작가는 소설에서 거식증(拒食症)으로 육체가 닳아지는 남편과, 아이를 낳지 못해 마음이 닳아지는 아내의 닫혀진 관계를 열어간다. 남편이 살이 마모될수록 혼신을 다해 새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는 것을 지켜보면서 아내는 새끼새를 다독이는 어미새의 온기로 남편을 품기로 한다.
소통의 단절과 개인의 고독을 탐구하는 데 초점을 맞췄던 신씨는 이처럼 새 작품집에서 고독한 존재들이 서로 어깨를 기대도록 살며시 밀어준다. 이를 두고 평론가 류보선씨는 "고독한 개인들이 힘겹게 친밀성을 획득해가는 과정, 타자와 융합하는 과정에 대한 서사"라고 본다. 작가는 "등돌린 타자들끼리의 새로운 관계망을 언어로 형성해 보려는 여정에 관심을 가졌다"고 말했다.
/김지영기자 kimj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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