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해외에서 / 80세 노작가 메일러의 "암울한 울림"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해외에서 / 80세 노작가 메일러의 "암울한 울림"

입력
2003.03.08 00:00
0 0

"그는 자신의 몸에서 조금 떨어져 살았다. 미심쩍은 눈으로 자기 자신의 행동을 관찰하면서 말이다."글을 쓰는 일에 관한 글을 모은 에세이집 '끔찍한 예술'(원제 'The Spooky Art'·랜덤하우스 발행)에서 노만 메일러는 책머리에 제임스 조이스를 인용하며 작가의 직업적 숙명을 암시하고 있다. 지금까지 30권 이상의 저작을 낸 불굴의 작가가 '끔찍히' 무서워하는 것은 다름 아닌, 아침마다 그를 기다리고 있는 텅 빈 백지이다. 소설가로서의 전문성이란 "일이 잘 안 되는 날에도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말하는 그는 이외에도 소설에서 일인칭·삼인칭 시점의 사용 문제, 작가의 이른 성공, 그리고 악평을 감당해내는 일 등에 대해 특유의 진솔한 목소리로 이야기하고 있다.

요즘의 반전운동이 그 성격은 다르더라도 베트남전 당시를 연상시키는 게 사실이고, 메일러야말로 베트남, 반전, 실존주의, 마약 등으로 규정되는 1960년대 미국의 산물이기에 이 책의 출판은 요즘 눈길을 끌고 있다. 그는 최근 한 인터뷰에서 "5분 동안 '악'이라는 말을 열 번 이상 하는" 부시와 같은 인간은 절대 신뢰할 수 없다고 강하게 비판, 건재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실제 그는 1967년 10월 반전 데모에서 구속됐었고, 이 경험을 바탕으로 쓴 소설 '밤의 군대'는 퓰리처상과 내셔널 북 어워드를 동시에 수상하기도 했다.

뉴욕 브룩클린에서 자란 메일러는 하버드대를 졸업한 후 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파리 소르본대 수학 도중 집필한 '나자(裸者)와 사자(死者)'로 등단, 곧 유명작가로 부상한다. 논픽션 소설의 창시자라 불리기도 하는 그는 실제의 사건과 사람들, 정치적 문제 등을 소설적 기법으로 서술하는 새로운 형태의 작법을 발전시켰다. 미국의 가장 대표적인 언더그라운드 신문 중 하나인 '빌리지 보이스'의 창간 멤버이고, 미국 펜클럽 대표를 지냈으며, 1969년에는 무소속으로 뉴욕 시장에 출마하기도 했다.

"우리는 이러다가 민주주의를 잃어버릴 것"이라며 요즘 미국의 파시즘적인 분위기를 염려하는 메일러는 이 책에서 소설이 사라지는 시대의 민주주의를 우려하고 있다. 그는 서사의 기능을 TV와 저널리즘이 잠식해가고 있는 이 시대는 분명 위험에 처해있다고 지적하며 소설을 통해서만이 민주주의에서 본질적으로 필요한, 정교한 도덕적 판단능력을 강화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올해 80세가 되는 노장의 우려 섞인 목소리는 임박한 전쟁의 예감과 함께 암울한 울림을 지닌다.

박상미 재미 번역가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