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1년 3월8일 이른 새벽 판소리 명창 임방울이 작고했다. 향년 57세. 그는 그보다 6개월 전 전북 김제 장터에서 소리를 하다가 목에서 피를 쏟고 쓰러져 서울 초동(草洞)의 집으로 옮겨진 뒤 줄곧 누워 있었다. 임방울은 딸이 관 속에 넣어준 낡은 음반 한 장과 함께 서울 망우리 공동묘지에 묻혔다. 그의 유해는 뒷날 여주로 이장됐다. 임방울의 본명은 승근(承根)이다. 지금은 광주광역시에 속해 있는 전남 광산 출신. 어린 시절 외숙 김창환의 영향으로 서편제를 익힌 것이 판소리와의 첫 인연이었다.남도 판소리는 섬진강을 경계로 흔히 동편제와 서편제로 나뉜다. 우조(羽調)에 실린 동편제는 기교를 가볍게 여겨 단순하고 소박하되, 웅장하고 호방하다. 남원 운봉 출신의 송흥록을 비롯해 송광록·박만순·송우룡·송만갑·유성준·전도성·강도근 같은 이들이 동편제 가인이다. 반면에 서편제는 계면조(界面調)에 실려 기교가 풍부하고 애처롭다. 박유전·정창업·이날치·김창환·이화중선·박초월 같은 이들이 서편제 가인이다.
임방울의 소리는 유성준에게서 '수궁가(水宮歌)' '적벽가(赤壁歌)' 등을 배우며 무르익었으니, 판소리의 법제 계보상 동편제에 속한다. 그러나 기교가 섬세한 그의 소리에는 구슬프고 애절한 서편제의 분위기도 짙다. 계면조 가락을 주조로 삼는 육자배기목을 자신의 소리에 들여옴으로써 임방울은 동편제와 서편제를 깊은 수준에서 아울렀다. 그는 튀어나오듯 맑고 힘차고 풍부한 청구성과 약간 쉰 듯 구수하게 곰삭은 수리성을 겸비한 뛰어난 가인이었다. 민족사적 시련과 양악의 쇄도에 치여 소리꾼으로서 임방울의 삶이 늘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대중적 무관심 속에서도 소리의 외길을 걸어온 그와 그 선후배들 덕분에 판소리는 아직 생명을 붙들고 있다. 고종석
/논설위원 aromachi@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