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적추적 봄비가 내리는 7일 낮 서울 안국동 느티나무카페 앞. 잔뜩 찌푸린 하늘을 쳐다보던 한 여성이 눈물을 터뜨렸다. "우리 남편 이제 죽어요. 죽는단 말이에요. 제발 살려주세요." 진보진영의 대표적 통일운동 단체인 통일연대를 이끌면서 각종 집회때마다 항상 강인한 모습을 잃지 않았던 김이경(42) 사무처장이었다.그의 눈물에는 두 가지 의미가 담겨있었다. 죽음을 무릅쓰고 단식중인 남편을 걱정하는 마음과 양심수 사면을 외면하는 정부에 대한 원망이었다. DJ정부들어 최초의 시국사건인 영남위원회 사건에 연루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부산교도소에 6년째 수감 중인 남편 박경순(47)씨가 단식을 시작한 것은 9일 전. 인권을 중시한다던 노무현 정부가 63명의 양심수를 사면하지 않는 데 대한 항의 표시였다.
말기 간경화 환자인 박씨에게 단식은 목숨을 건 싸움이다. 부산교도소측이 단식 엿새째인 4일 실시한 혈액검사 결과 이미 간 수치가 최악의 상태로 접어들었다. 박씨의 체중은 6㎏ 이상 줄어들었고, 면회자들과 대화를 나눌 때에도 평소와는 달리 정확한 발음을 못할 정도다. 최인순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집행위원장은 "간경화와 같은 소모성 질환의 경우 단식이 열흘 이상 지속되면 생명이 위독하다"고 밝혔다.
급기야 교도소측은 형 집행정지 조치 후 정밀 검사를 실시하자고 제안했고, 강금실 법무장관도 6일 "양심수 사면 방안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부산의 대표적 재야인사인 송기인 신부 등도 면회를 통해 "우선 목숨은 부지해야 한다"며 박씨에게 단식 중단을 권유했다.
하지만 박씨는 "양심수 전반에 대한 사면조치가 있기 전에는 나만 혼자 사는 길을 택할 수 없다"며 일체의 치료마저 거부하고 있다. "남편은 하루만 더 단식을 해도 목숨이 위험해요. 이런저런 곳에서 양심수 사면 검토 얘기가 나오지만 왜 대통령이 나서서 말 한마디 하지 않나요?"
/정상원기자 orno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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