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정부의 골격이 갖춰졌다. 연령적으로는 40∼50대가 주축인 내각의 구성이 역대 어느 정부보다 젊다. 전체적인 인상이 '기능' 쪽보다는 '이념' 에 치중한 인선처럼 느껴진다. 가급적 '노무현이즘'의 동조자 내지는 추종자 위주로 판을 짜려 한 흔적이 역력하다. 한마디로 시대 변화를 실감케 한다. 적어도 '그 밥에 그 나물'이란 혹평은 피할 수 있을 것 같다.'낡은 정치 청산'을 기치로 한 정부로서는 불가피한 선택일지 모른다. 주요부서인 행정자치부와 법무부 수장에 40대 전직 군수와 변호사를 기용했다. '파격'이란 세평에 '타성에 젖은 시각'이라 일축했지만, 과거 경험에 비춰보면 분명히 '격을 깬 것'이다. 요란했던 하마평 때문에 생긴 면역성 때문인지 충격으로 받아들이는 기색은 별로 없다. 오히려 '노무현 다운' 인사라고 체념하거나 괘념치 않으려는 분위기다.
40대 여성 변호사에게 검찰개혁을 맡긴 함의는 기존질서의 혁파일 것이다. 더구나 그는 판사출신이다. 하마평 때의 반발 움직임과는 달리 검찰내부가 큰 저항 없이 진통하는 모양새다. 검찰의 이런 속성을 미리 간파했다면 선견지명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급격한 서열파괴에 대한 불만은 내연하고 있다. 이것도 개혁을 위한 일시적 진통으로 접어두기로 하자.
검찰은 권력의 칼이자, 창이다. 집권에 성공하면 흔히 권력은 힘을 과시하고픈 유혹에 빠진다. 사정(司正)과 정치보복은 그래서 종이 한 장 차이일 뿐이다. '우리는 그렇지 않다'고 손사래 쳐도 사람들은 '그것이 권력의 속성인걸' 하고 믿으려 않는다. 이름하여 공권력이란 지금까지는 권력의 편이었지, 결코 백성의 편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검찰개혁은 따라서 간단하다. 권력자 한 사람의 의지만으로도 해결 가능한 과제다. 대통령이나 권력 주변이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불순한 생각만 버리면 검찰은 제대로 설 수 있다. 노 대통령 스스로 밝힌 3·1절 기념사 대로 이런 다짐과 의지를 실천에 옮기기만 하면 검찰을 비롯한 권력기관의 개혁은 마무리된 것이나 다름없다.
화급한 것이 외교분야다. 현재 한반도 지형은 북한 핵 문제로 혼란스럽다. 정부의 주도적 역할 다짐이 공허하다. 북한 핵을 포기토록 할 능력이나, 미국의 공격적 자세를 억제할 힘이 지금 우리에겐 없다. 북한의 잇단 도발적 자세는 평화적 해결 가능성을 점점 파쇄하고 있다. 그런데도 정부는 '평화적 해결'이란 판에 박은 얘기만 되풀이하고 있다. 과연 이 정부의 위기대처 능력을 믿어도 될지 의심스럽다.
외교현장은 냉엄한 실전장이다. 연습이 허용 안 되는 분야다. 외교의 미숙이 초래하는 손실은 계량이 쉽지 않다. 또 만회는 많은 시간과 대가를 요한다. 명석한 학자출신 수장에게 거는 기대 만큼이나 불안감도 큰 것은 현장경험이 전무하기 때문일 것이다. 미-북 대화에 완전 배제된 채 '봉 노릇'에 그쳤던 94년 핵 위기 때의 악몽이 되살아 난다.
작금의 한미관계는 최악의 상황이다. 대북정책을 둘러싼 견해차 때문이다. 그런데도 봉합노력이 눈에 잘 띄지 않는다. 오히려 더 악화 조짐만 나타나고 있다. 가뜩이나 북한 핵 문제는 94년 상황과 별로 다르지 않다. 우리가 원치 않는 전쟁 상황이 결코 재발하지 않으리라 장담하기 어렵다.
'설마'가 사람을 잡을 수도 있다. 이럴 때일수록 사려 깊은 대처가 요망된다. 대통령의 한마디 한마디나, 주무장관의 일거수 일투족은 곧 나라의 명운과도 직결된다. "정직이야 말로 최선의 외교정책"이란 비스마르크 시대에서나 통했을 말이다. 정교한 외교적 수사(修辭)가 필요한 시점이다. 우리 몰래 음습한 전쟁 시나리오가 구체화하지는 않는지,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한다. 외교가 가장 금기시해야 할 대목은 오기나 아집이다.
노 진 환 주필jhr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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