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겁한 검사가 되지 마라." 6일 서초동 서울지검 청사 14층 서울고검장실. 이종찬(사시 12회) 고검장은 이날 사표를 냈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온 서울지검 특별수사담당 부장 6명에게 이렇게 충고했다. 이 고검장은 당대의 특수수사 검사 선배를 잃는 섭섭함을 토로하는 후배들에게 "우리는 정말 '정의로운 검찰'이 돼야 한다"고 신신당부했다. 그는 "가진 자의 편도 아니고 지배자, 피지배자의 편도 아닌, 오직 실체적 진실과 법률에 봉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검사와 검찰이 정의로운 존재로 국민들에게 남아야 하는데, 우리 검찰은 그렇지 못했다"며 '쓴 소리'를 잊지 않았다. 퇴진하는 선배의 뼈있는 한 마디에 후배 검사들의 표정은 숙연했다.이 고검장에게는 늘 율산그룹 사건, 압구정 현대아파트 특혜분양사건, 이철희 장영자 사건, 5공비리 사건, 율곡비리, 12·12 및 5·18사건, 세풍사건 등 1980∼2000년대 대형 비리사건 수사검사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녔다. 검찰총장과 사시 동기생인 이 고검장은 27년간 봉직한 검찰을 떠나기가 아쉬우면서도 최근 5년간 검찰의 혼란상이 안타까운 듯 "지금까지 쌓아놓았던 검찰이라는 성(城)이 한꺼번에 무너졌다. 검찰을 믿지 못해 특검제까지 도입된 것을 치욕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검사로 재직하며 검찰의 중립을 제도화할 기회가 2차례 있었으나 이를 놓쳤다고 아쉬워했다. 서울지검 특수3부장 시절 '한국의 FBI'를 구상하며 특별수사본부를 발족시켰으나 한계를 넘지 못했고, 대검 총무부장 시절 검찰에 '특별검찰청'을 만들자고 주장했으나 주목받지 못했다.
이 고검장은 "검찰의 정치적 중립은 인사가 가장 중요하다"며 "검찰 수뇌부가 검사 정신에 투철하고 인사권을 가진 사람이 정치적 중립을 지키려 노력해야 한다"고 고언을 쏟아냈다. 또 강금실 법무장관이 주도하는 검찰의 서열파괴 바람에 대해 "어느 조직이나 경륜과 패기의 조화가 필요한데 한쪽으로 기울면 안된다"며 각을 세웠다.
특수부가 전공인 탓에 '주변에 적이 많다'는 평을 들어온 이 고검장은 특수부를 지휘하는 신상규 서울지검 3차장에게 "특수부는 폭탄을 안고 있는 부서다. 주위에 인심을 잃더라도 철저히 장악하고 수사해야 한다"는 당부를 남겼다.
한편 동기인 이 고검장과 함께 사표를 낸 김승규 부산고검장은 "후배들이 잘해 줄 것"이라며 "이번이 검찰을 위해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퇴진 소회를 묻자 "그저 조용히 사라질 뿐"이라고 간단히 답했다. 기획과 실무능력을 겸비, 검찰내 최고 지략가로 꼽혔던 한부환 법무연수원장은 이날 사표를 낸 뒤 외부와 연락을 끊었다.
/이태희기자 taehee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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