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대제 정보통신부 장관이 본인의 국적과 아들의 병역문제 때문에 곤욕을 치르고 있다. 우리 전자산업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한 훌륭한 경영인이었던 분이 그 명예와 권위에 치명상을 입고 있다. 장상 총리서리의 불행한 선례에도 불구하고, 청와대는 또 다시 신중하지 못한 인사를 감행하여 한 중요한 인물과 전자산업 전체에 큰 손해를 입히고 말았다.본인의 해명이나 언론의 조사에 따르면 진 장관이 어떤 실정법을 어긴 것 같지는 않다. 신사적으로 처신했다 할 수는 없지만, 도덕적으로 큰 잘못을 저지른 것 같지도 않다. 우리 나라에서 그가 얻은 기회와 그가 처한 상황에서 그와 다르게 행동했을 사람들은 그렇게 많지 않을 것이다. 한 시민으로서의 진대제씨에게 돌을 던질 수 있는 사람은 우리 사회에 그렇게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에 대한 일부 시민들과 언론의 비난이 전혀 잘못된 것이라고 할 수도 없다. 일반 시민이나 기업 경영인에게 요구되는 도덕성과 장관에게 요구되는 도덕성이 다르기 때문이다.
만약 그가 삼성전자의 사장으로 남았더라면 이런 문제가 불거지지도 않았을 것이거니와 그의 도덕성이 그렇게 비판받지도 않았을 것이다. 물론 경영자에게도 도덕성은 요구되지만,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직원들이 즐겁게 열심히 일할 수 있고 기업이 많은 이윤을 낼 수 있게 하는 능력이다. 그러나 장관의 임무가 경영인의 임무와 다른 것처럼 그에게 요구되는 도덕성도 경영인에게 요구되는 도덕성과 정도와 성격에 있어서 다를 수밖에 없다.
고위 공직자에게 높은 도덕성과 신사도를 요구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장관은 무거운 임무를 감당하는 힘든 직책이지만, 많은 사람이 부러워하고 스스로도 금배지를 달고 다닐 만큼 자랑스러워하는 자리다. 엄청난 특권과 명예가 주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특권과 명예를 누리려면 그에 상응하는 자격이 있어야 하고, 그 자격의 중요한 부분이 바로 높은 수준의 교양, 도덕성, 신사도다. 그런데 교양, 도덕성 그리고 신사도는 모두 어느 정도의 희생과 절제를 함축한다.
서양의 귀족 자녀들이 거의 예외 없이 군에 복무하고 전쟁이 일어나면 선두에 나서는 것이 그 예다. 비록 합법적이라도 보통 사람들이 누리지 못하는 기회, 능력, 특권, 편의를 다 누린다면 그 사람에게 높은 수준의 도덕성과 신사도가 있다 하기는 어렵고, 그런 특혜를 얻지 못한 사람들이 공평하지 못하다고 느끼는 것을 단순히 하나의 질투로 치부할 수는 없다. 보통 사람들은 자기들이 하지 않을 희생, 절제, 봉사를 하는 사람이라야 존경하고 그의 지도를 즐겨 따르려 한다. 노무현씨는 당선가능성이 있는 지역구를 지역주의 극복을 위하여 포기한 것이 그의 대통령 당선에 크게 공헌했다. 보통 정치가들이 즐겨 하지 않을 희생을 감수했기 때문이다.
물론 높은 도덕성이 장관 자격의 전부는 아니다. 장관에게 능력은 매우 중요하고, 바로 그 때문에 대통령은 진대제씨를 장관에 임명했고 지금도 옹호하고 있다. 그리고 다른 선진국에서는 위법이 아닌 한 고위 공직자의 과거를 크게 문제삼지 않고, 진대제씨도 그런 나라에서는 별 문제없이 훌륭하게 장관의 임무를 수행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는 고위직의 솔선수범을 중시하는 유교적 전통이 아직도 강하게 남아있고, 그 동안 특권층의 부정이 극심했기 때문에 큰 권력과 영향력을 가진 고위 공직자의 도덕성에 유난히 민감할 수밖에 없다. 지금 당면한 문제는 시민들의 비난 자체가 옳은가 그른가 하는 것이 아니라, 과연 진대제씨가 장관의 임무를 효율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본인, 대통령, 그리고 업계에 손실만 가져 온 이런 비극은 결코 반복되지 않았으면 한다.
손 봉 호 서울대 사회교육과 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