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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앤 로이어 / 법조인 칼럼 - 위기앞에 굴복한 기관사의 직업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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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앤 로이어 / 법조인 칼럼 - 위기앞에 굴복한 기관사의 직업윤리

입력
2003.03.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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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처구니가 없었다. 200명에 달하는 고귀한 인명이 순식간에 희생되다니. 슬픔을 가누고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도대체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기관사는 어떤 상황에서도 승객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져야 한다. 그런데도 화재가 난 역사(驛舍)로 전동차를 진입시켰다.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뒤에도 승객 대피나 보호 조치 없이 줄행랑을 쳤다. 참사의 직접 원인은 물론 기관사의 잘못된 판단이다. 하지만 평소 정해진 시각에 반드시 목적지에 도착하도록 교육을 받는 바람에, 그래서 승객 안전보다 목표 달성을 우선시하는 의식에 젖어있던 탓에 이런 참사가 발생한건 아닐까. 항공기나 선박이 기체결함이나 기상악화 때문에 결항할 경우 승객들이 거세게 항의하고, 그 때문에 운송업체는 안전을 버리고 모험을 감행하던 모습이 오버랩 되는 것은 왜일까.

기관사는 위기 앞에서 직업 윤리와 책임감을 버렸다. 직업 윤리와 책임감은 위기나 극한적 사태에 부닥쳐 희생이 필요할 때 더욱 요구되는 덕목이다. 그런데 어디 기관사 뿐인가. 정치인을 비롯해 국가 안전과 국민 안위를 책임져야 할 사회 지도층 인사들이 자신의 처지가 어려워지면 외국으로 도피하고, 국민이 망각할 때쯤 소리없이 귀국해 끝내 합당한 처벌을 받았는지조차 모르게 흐지부지 되는 일이 좀 많았는가. 우리 사회가 일단 피하면 나중에 살 길이 있다는 얄팍한 처세술에 물들어 있어 이런 비극이 발생한 것은 아닐까.

이번 참사에서도 증거 조작과 은폐가 있었다. 우리 사회의 비겁함, 사회윤리의 부재와 불건전함이 고스란히 드러난 것이 무선교신 녹취록 조작과 누락이다. 진실의 은폐와 증거의 조작은 조직의 관련자 모두가 저마다의 필요에 의해 공모해야 가능하다. 만일 단 한 명이라도 자신의 양심에 따라 거부하거나 반발했다면 증거 조작과 은폐는 이뤄지지 않았을 것이다. 대구지하철 방화 참사에 책임이 있는 사람들이 유족과 시민들에게 진실을 밝히고 사죄하려 하기보다 진실의 은폐와 증거의 조작에 가담한 사실은 도덕을 상실하고 윤리의식이 희박해지는 우리 사회의 자화상이 아닐까.

이 상 수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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