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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론]北 자승자박 말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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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론]北 자승자박 말아야

입력
2003.03.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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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북한의 군사적 위기조성이 단계적으로 구체화하고 있는 것 같다. 1994년 이후 동결됐던 북한 핵시설의 재가동 움직임과 미그기의 북방한계선(NLL) 월선, 단거리 미사일 시험발사, 미정찰기에 대한 근접위협 비행 등으로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어 가는 느낌이다. 특히 북한이 '정전협정 탈퇴'라는 초강수를 시사함으로써 암운이 드리워지고 있는 듯하다.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가 국제적 긴장과 자신의 고립을 초래했다면 '정전협정 탈퇴'는 한반도의 직접적인 군사 충돌의 불씨가 된다는 측면에서 우려된다. 북한은 미국의 군사적 위협을 빌미로 이제까지 끈질기게 추구해온 정전협정 폐기를 기정사실화할 가능성이 커졌다. 우리 사회 일각에서는 하루빨리 정전협정체제를 평화협정체제로 바꾸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론적으로는 타당한 주장이다. '정전'이라는 불안한 상태보다는 공고한 평화상태가 훨씬 낫기 때문이다.

평화라는 단어는 거의 마술에 가깝다. 북한이 말하는 한반도 평화는 주한미군이 없는 상태에 불과하며, 우리가 주장하는 평화는 문자 그대로 남북한의 군사적 적대감이 사라지고 신뢰가 구축된 이상적인 안정상태를 의미한다. 북한이 정전협정을 무시하겠다는 것은 유엔사와 주한미군의 존재를 원천적으로 무시하겠다는 의도다. 유엔사와 주한미군의 존재가 부정되는 상황에서 북한은 대남 무력활동에서 훨씬 과감하고 자유스러워질 수 있다.

북한이 NLL을 무시하고 도발을 빈발함으로써 군사적 긴장을 높여온 것도 비슷한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북한은 북방한계선에 대한 정전협정체제상의 모호성을 빌미로 해상도발을 감행하여 한반도의 군사적 위기를 고조시켜왔다.

북한이 '정전협정 탈퇴'를 공식 선언하게 될 경우 한반도의 군사적 불안이 확대될 것이다. 이제까지 지켜져 왔던 남북한의 군사적 질서가 혼돈의 상태로 빠져들 수 있다. 북한은 NLL 침범처럼 비무장지대(DMZ)를 무시하는 크고 작은 군사적 도발을 일으키려 할 공산이 크다. 이와 같이 북한은 한반도의 위기조성에 앞장서면서도 그 책임을 미국에 돌릴 것이다. 미국이 먼저 북한에 대해서 적대적 태도를 취해 왔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며 우리의 '반미주의' 감정을 증폭시키려고 할 것이다. 동시에 북한은 한미동맹에 대한 미국 내 뿐만 아니라 한국 내 부정적 인식을 자극하는 보다 적극적인 대미· 대남 전술적 공세를 강화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북한 당국은 이러한 공격적이고 부정적인 선택이 스스로를 위기에 빠뜨리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북한의 군사적 위기 조성은 미국의 강한 반발을 불러 한미동맹관계를 약화시키기보다는 더욱 굳건하게 만드는 계기로 작용하게 된다. 미국을 대화의 장으로 끌어들이기보다는 미국의 대북 적대감을 더욱 심화시킬 것이다.

대남 차원에서도 마찬가지다. 북한의 군사적 강경정책은 한반도의 긴장을 조성해 남한사회를 일시적으로 불안하게 할 수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것은 궁극적으로 남한의 대북 적대감을 확산시켜 남한의 적극적인 대북교류 의지를 꺾어버릴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럴 경우 북한은 고립을 자초하게 되어 체제붕괴 위험까지도 걱정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따라서 북한은 핵무기도 개발하고 대외 관계도 개선하는, 두 가지 목적을 동시에 실현할 수 있다는 환상에서 깨어나야 한다. 북한의 핵개발을 허용할 수 없다는 것이 미국이나 우리의 분명한 입장인 만큼 핵개발 포기가 선행되기 이전에는 어떠한 실질적인 대화도 어렵다는 사실을 되새길 필요가 있을 것이다.

정 영 태 통일연구원 선임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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